다국적 제약사들의 특허권 남용을 막고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4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보건복지부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독점을 방지하고 국내 제약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은 특허권을 제약하는‘과잉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한 건보법 개정안은 오리지널약의 특허권을 가진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제약사들의 복제약 판매를 금지(최장 9개월)시킨 경우, 특허 소송에서 패하면, 판매금지 기간 동안 이들이 벌어들인 약값의 30%를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한미 FTA 후속조치로 지난 3월 15일부터 시행된‘의약품 허가ㆍ특허 연계제도’에 대한 일종의 견제책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다국적 제약사는 특허권 침해 여부를 불문하고 복제약 제조를 신청한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 판매를 최장 9개월간 금지할 수 있게 됐다. 안정성과 유효성만 확인되면 국내 제약사들의 복제약 판매를 허용했던 기존 제도에 비해 다국적 제약사에 크게 유리한 제도다.
문제는 특허를 침해하지 않은 복제약까지 다국적 제약사가 판매금지를 신청한 경우다. 그 기간 동안 국내 제약사는 복제약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복제약이 판매허가를 받으면 오리지널약은 기존 가격의 70%로 팔아야 하는 데 판매금지가 되면 특허권을 가진 제약사들은 판매금지기간 동안 계속 비싼 값으로 오리지널약을 팔 수 있다. 환자도 비싼 오리지널약을 복용해야 하고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에 지불하는 약값도 그만큼 더 든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지불한 전체 진료비(54조4,250억원) 중 24.52%(13조3,454억원)가 의약품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판매금지 신청을 하면, 건보 재정 부담도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복제약이 특허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이 날 경우 판매금지를 신청한 제약사에는 손실액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논리다.
국회 상임위도 지난 5월 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사위에 상정된 법안은 4 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 법사위는 특허침해 소송에서 패소했어도 다국적 제약사의 판매금지 신청을 위법으로 볼 수 없고, 판매금지기간 벌어들인 오리지널약값을 다국적 제약사의 부당한 이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형식만 갖추면 무조건 판매금지 신청을 받아주는 절차의 부당성을 주장한다. 이선영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특허권을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부당한 판매금지 신청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으면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를 남용할 수밖에 없고 그 손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와 호주도 허가ㆍ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했지만 특허권자가 판매금지 신청을 할 경우 별도의 정부기관이나 법원이 금지신청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한다.
시민단체들도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인 신현호 고려대 법학전문대 겸임교수는 “가처분 집행 후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대법원은 신청인에게 고의 과실을 추정하고 있다”며 “판매금지 기간 중 고가로 판 약 값은 부당이득으로 환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시내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이사는 “특허 소송에서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금지 신청이 부당하다고 보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지난 3월 ‘의약품 허가 특허 연계 제도가 시행된 후 한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복제약 제약사에 대해 판매 금지를 신청했다가 한달 만에 자진 철회하기도 했다. 다국적제약사들이 국회에 “건보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판매금지 신청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주면서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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