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읍내로 밤마실 오세요"
재미난 발상의 ‘夜한九景’ 조성
소박하지만 정겨운 읍내여행 한번 떠나보시라.
올 봄 전북 부안에선 재미난 축제로 읍내 전체가 들썩거렸다. 5월 초 열렸던 부안마실축제 이야기다. 공설운동장 등을 무대로 하는 보통의 지역축제와 달리 읍내에서 펼쳐진 거리축제가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무슨 거창한 걸 내세운 것도 아니다. 그냥 동네로 재미난 마실 가자고 했던 이번 축제에 3일간 30여만명이 참가했다. 마지막 날 읍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강강술래 이벤트에선 세상에서 가장 큰 동그라미를 그려보자는 제안에, 주민들이 장롱 속 고이 간직했던 한복을 꺼내 입고 나와 거리를 가득 메우며 신명 나는 춤판을 벌이는 진풍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슬리퍼를 신고 대문 밖으로 말 그대로 마실을 나가 맘껏 축제를 즐겼고 그 흥겨운 모습에 관광객들도 읍내에 머물며 축제를 함께 한 것이다. 스스로가 즐거우면 남도 따라 즐거운 법. 축제란 게 원래 그런 거였다.
부안군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최근 읍내에 조성된 ‘야한구경’에서 또 다시 빛을 발한다. 관음증을 유발하는 야릇한 볼거리가 아니라 밤의 아홉 가지 풍경을 이야기하는 ‘夜한九景’이다. 인구가 줄며 썰렁해진 읍내에 생기를 불어넣자고 나선 프로젝트다.
신석정문학관에서 출발해 신석정 시비들이 이어진 마로니에 가로수길인 ‘문학이야(夜)’가 야한구경의 제1경이다. 부안 출신으로 부안에서 시를 써온 그의 첫 시집은 ‘촛불’. 우연히도 이 길의 가로수인 마로니에가 봄에 피우는 꽃이 촛불을 닮았다.
야한2경은 ‘청춘이야(夜)’. 수 십년 전 터미널과 극장 시계탑 등이 모여있던 구도심이다. 당시 부안 주민들이 친구와 만나자고 하는 약속은 그냥 ‘시계탑 앞에서 보자’였다고. 군은 낭만과 역사가 어우러진 이곳에 시계탑을 다시 세우고 젊음이 다시 꿈틀댈 수 있는 거리로 조성 중이다.
야한3경 ‘시장이야(夜)’의 무대는 부안상설시장이다. 변산의 바다가 지척이지만 부안읍 주민들은 회를 먹으로 굳이 바닷가로 나가지 않는다. 부안상설시장에 칠산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이 펄떡거리기 때문. 시장 안에는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횟집들이 모여있다. 이곳에 들러 오늘 가장 싱싱한 걸 물어 회나 조림 등의 요리를 시키면 된다. 시장 안에는 팥죽집도 여럿 있다. 시장의 맛난 팥죽집들을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야한4경은 ‘물고기야(夜)’. 폐수로를 활용한 실개천 양 끝에 물고기의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 조형물이 분수와 함께 우뚝 서있다. 이름하여 롱롱피쉬. 날이 저물고 롱롱피쉬에 조명이 밝혀지면 많은 이들이 실개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호젓한 산책을 나선다.
5경 ‘정원이야(夜)’가 압권이다. 롱롱피쉬와 이어지는 곳으로 도심 거리 한쪽을 운치 있는 정원으로 조성했다. 이 거리는 영국 첼시정원박람회에서 2번 수상한 경력의 황지해 작가 작품이다.
이 정원의 입구인 사거리의 한 신호등 꼭대기엔 쥐 한 마리가 올라타 있다. 건강한 정원엔 쥐가 있어야 한다고 올린 쥐 조형물이다. 정원의 담벼락과 신호등엔 앙증맞은 쥐 발자국도 찍혀있다.
매창 사랑의 테마공원이 6경 ‘사랑이야(夜)’이고, 7경 ‘편백이야(夜)’는 서림ㆍ연곡ㆍ진동공원에 조성되고 있는 편백숲이다. 8경 ‘호숫가야(夜)’는 고마제 저수지에, 9경 ‘별천지야(夜)’는 신운천 생태하천복원사업 구간에 조성 중이다.
읍내의 소박한 풍경들이 이런 재미난 발상과 이름이 덧붙여지니 구경꾼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부안=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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