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라온시큐어 연합 '데프코'
해커 월드컵 '데프콘'서 첫 우승
“해킹이 그렇게 별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19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만난 이휘원(22)씨는 모범생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요즘 대학생처럼 한껏 멋을 부리긴 했지만 차림새와 말투는 단정했다. 이씨는 “오죽하면 집과 학교만 오간다고해서 별명이 ‘휘봇’(휘원 로봇)”이라며 웃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킹 기술을 가진 이씨는 “해커라면 뭔가 세상과 담을 쌓은 기괴한 컴퓨터쟁이일거라는 선입견을 버려달라”고 했다.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에 다니는 이씨는 이달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해킹방어대회 ‘데프콘’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프코(DEFKOR)팀 소속 해커다. 1993년 시작된 데프콘은 내로라하는 해커들이 모여 세계 최강자를 뽑는 대회로 ‘해커들의 월드컵’이라 불린다. 한국팀은 2006년 이후 10년째 출전했으나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거친 뒤 미국에서 열린 2박3일간의 결선 끝에 1위를 차지했다. 우리팀 소프트웨어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상대팀 소프트웨어를 공격해 비밀을 캐내 득점하는 쪽이 이긴다. 이씨가 속한 고대 정보보호동아리 싸이코(CyKor)와 보안업체 라온시큐어 소속 해커 등 18명이 한 팀을 이뤄 일궈낸 성과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들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이날 환영식을 열었다. 계속 증가하는 해킹 관련 범죄를 저지하기 위해 해킹을 저지하는 화이트해커를 정책적으로 키우겠다는 취지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해킹사고로 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 1만5,545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 5년간 흐름을 보면 스팸이나 피싱 등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단속을 펼 때 조금 움츠러들었다 다시 확산되는 경향이 반복됐다. 모바일의 대중화와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할수록 해킹 사고는 더 치명적인 위험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이번 대회 참가에서 얻은 지혜를 동료, 후배들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원래 고려대 의예과에 복수 합격했지만 사이버국방을 택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대신 자신만의 길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잠시 후회도 했다. 입학해보니 어릴 때부터 컴퓨터나 게임에 ‘미쳤던’ 학생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괴짜가 아닌 평범한 학생도 해커가 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해커는 단순히 해킹기법만 다루는 게 아니라 수학, 암호, 논리학 등을 체계적으로 익혀 큰 틀에서 전략 전술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데프콘 대회 때도 낮 시간 경기가 끝난 이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밤 새워 다음날 전략을 짜는 데만 골몰했다.
이씨는 “아직도 화이트해커의 영역이나 역할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아쉽다”며 “해커라는 직업이 이제야 양지로 올라왔으니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선에서 맞붙은, 현재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팀 ‘PPP’의 팀장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우승 뒤 받은 금메달에는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한글문구가 장난스럽게 새겨져 있을 정도로 해커들은 디지털이 발달한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그걸 모르는 건 정작 우리 뿐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