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가 올해도 물 건너갈 모양이다. 본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법인심사소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9명 전원을 상대로 종교인 과세 법제화와 연내 국회 통과 필요성을 물은 결과 2명만이 찬성 입장을 보였다(19일자 1ㆍ3면). 나머지 7명은 ‘입장 유보’ ‘신중’ ‘모든 종교단체 동의 뒤’ 등의 애매한 답변에 머물렀다. 이런 분위기라면 종교인 과세 방안을 담은 세법 개정안이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정부는 지난 6일 종교인 과세 방안을 포함한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에 ‘종교소득’ 범주를 만들어 소득의 20~80%를 필요경비로 공제해 주기로 했다. 과세 방식도 원천공제와 자진 납부 중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실효세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니 종교인들이 큰 부담을 느낄 게 없다. 기획재정부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종교인 23만 명 중 과세대상자는 5만 명이 되지 않고, 추가 세수도 연 100억 원 남짓하다.
애초에 종교인 과세는 액수가 아니라 조세정의 실현의 상징성이 문제였다. 1968년 국세청이 처음 도입을 시도한 이래 47년 간 성역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종교인 과세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국민 개세(皆稅)주의를 천명한 헌법 규정대로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 종교인들 스스로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납세를 거부할 수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종교인이라고 피해 갈 만한 정당한 사유라고는 없다. 성직자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납세할 수 없다는 주장은 도리어 수많은 근로자를 우롱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도 조사대상자의 75.3%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천주교의 경우 이미 1994년 주교회의 춘계회의 이후 근로소득세 기준에 따라 납세를 하고 있다. 불교계 역시 원칙적으로 과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개신교단 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과세를 환영할 뿐만 아니라 이번 과세 안은 부족하니 종교소득 항목이 아닌 근로소득 항목으로 세금을 부과하라고까지 주장한다. 지난해 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 중에서도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비율이 72%를 넘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일부 보수 개신교단에 한정돼 있다.
이처럼 일반 국민과 종교인 대다수의 생각이 접근한 마당에 유독 국회만이 딴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한 표라도 덜 잃으려는 정치적 고려만이 돋보인다. 언제까지 일부 종교인의 표심에 사로잡혀, 입법자 스스로 조세 형평을 멀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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