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를 꼭 해야 할까요? 우선 국가 세수(稅收)확보 차원에서 보면 종교인 과세는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라 살림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정부는 종교인 과세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추가 세수를 연간 100억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소득세수 48조3,000억원(2013년 기준)의 0.02%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규모입니다. 1994년부터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 온 천주교는 물론 불교와 개신교 일각에서도 이미 소득세를 내고 있어 추가로 세금을 걷을 종교인은 4만~5만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청년실업과 고착화된 저성장, 남북 관계, 재벌개혁 등 종교인 과세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이는 이슈가 한국엔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래서 종교인 과세는 조만간 시작될 국회의 세법 개정안 심의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번에도 흐지부지 묻힐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18일 한국일보는 국회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종교인 과세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 기사보기)를 실시했는데요. 한 의원은 인터뷰 과정에서 “답답한 질문”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세법 심사에서는 종교인 과세 말고도 법인세 등 중요한 쟁점들이 아주 많다. 종교인 과세는 안 한다고 해도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 입장에선 잠깐 기분 나쁘고 말, 그런 주제에 불과하다. 왜 자꾸 종교인 과세 문제를 언론이 부각시키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세수도 미미하고 시급성도 떨어지는 종교인 과세는 극소수 강경파 개신교 단체 때문에 추진이 더더욱 어렵습니다. 종교인 과세를 추진했던 한 공무원은 종교인과 간담회 자리에 ‘사탄의 자식’이라는 저주를 면전에서 들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요컨대 국회나 정부 입장에서 종교인 과세는 얻는 건 적은데 잃는 것은 분명한, 그다지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이슈입니다. 조세소위 의원 대다수가 본보 설문조사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명확한 찬반 입장을 밝히기 주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종교인 과세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종교인 과세 관련 기사에는 댓글이 수천 건씩 달리는 것은 예사이고, 한 시민단체는 종교인 과세 국회 통과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국회나 정부와 달리 국민들은 종교인 과세에 왜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종교단체의)동의를 받고 과세한다는 것에서 웃으면 되나요. 그러면 저희도 동의 좀 받고 과세하시죠. 유리지갑이라고 보이는 대로 가져갑니까.”(본보 조세소위 의원 설문조사 기사에 달린 댓글)
적은 월급에 허덕이는 대다수 국민들은 그저 정부에서 내라니까, 딱히 동의를 한 적도 없지만 묵묵히 소득세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납세 의무가 있다니까, 안 내면 처벌 받으니까, 손 쓸 새도 없이 월급에서 공제돼 나가니까 그저 납세할 뿐입니다. 그런데 국회는 종교인 과세에 있어서 만큼은 유독 ‘종교단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낯설기 그지 없는 세심한 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 온 대다수 근로소득자ㆍ사업소득자 입장에서 분통이 터질 수밖에요. 국민들은 세금이 많고 적음에 민감한 만큼이나, 세금의 형평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 사건 또한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자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국회와 정부는 벌써 잊어버린 걸까요. 세수가 적다고, 덜 시급해 보이는 이슈라고 해서 국회와 정부가 종교인 과세 문제를 더는 뒷전으로 미뤄둬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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