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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 패러독스

입력
2015.08.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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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독재 권력이 탄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정치제도다. 1933년에 히틀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알려진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 체제 하에서 대중의 열렬한 지지로 집권할 수 있었다. 이렇듯 어떤 체제나 제도 내부에 자기 파괴적인 요인을 내포하는 역설적 현상을 패러독스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탐욕과 공항으로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불안한 제도이다. 1920년대 대공황 이래 세계 자본주의는 몇 번 그런 위기를 겪었다. 불안하기로 말한다면 인간이 발명한 제도 중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만한 제도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가 유용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패러독스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패러독스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 너머에 있는 숨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남다른 행복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국내에 ‘패러독스’의 저자로 알려진 취리히 대학의 진화생물학 교수인 안드레아스 바그너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생명의 번식과 진화의 비밀은 바로 패러독스의 증가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패러독스가 존재해서 안 되는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쪼개진 남남갈등이 있고, 남북한은 서로 잡아먹을 것 같이 으르렁거리며, 국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쟁탈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협력해야 하지만 정치와 안보는 대립적 양상으로 치닫는 걸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도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그 반대편을 잃어버리는 이 지독한 역설은 마치 국가의 생존을 뿌리 채 흔들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지금 우리는 이런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보면 바로 이러한 패러독스의 증가가 대한민국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밝은 역사로 반전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9월 전승절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양다리 전략이 결국 가랑이를 찢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불안한 심리도 표출된다. 그렇다면 다리의 길이를 왕창 늘려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면 된다. 즉 양다리 전략이 갖고 있는 패러독스를 사지 연장 전략에 연결시키자는 이야기다.

박 대통령이 최근 경제가 어렵고 톈진 폭발사고까지 겹쳐 실의에 빠진 중국을 방문하여 위로해준다면 향후 우리가 얻을 이익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활동 지평을 확대하는 사지연장론이다. 다른 서방의 지도자가 못하는 일을 우리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패러독스인가.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구축할 대화와 협력의 상대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서로 대치하는 명백한 적이다. 하필이면 개성공단과 도라산역이 있는 남북 협력의 상징적 공간인 전방 1사단 지역에서 북한이 매설한 목함 지뢰가 터졌다. 이런 패러독스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남북 대화를 제안하는 모순된 행동을 이 정부는 모두 보여주었다. 광복절을 목전에 둔 지뢰 사건 국면에서 마치 국방부와 통일부는 서로 다른 정부에 속한 것처럼 방향이 다른 대북정책을 폈다. 청와대의 느려터진 대응만 제외한다면 기묘하게도 방향이 모호한 이런 이중전략이 국민에게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갔고 남남갈등도 우려할 만큼 크지 않았다. 패러독스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니까 의외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음 전략은 안보태세를 정비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는 사지 연장 전략으로 더 나아가면 된다. 이런 패러독스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서 국운이 융성하는 한반도 시대를 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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