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언뜻 배우기 쉬운 악기처럼 보인다. 건드리면 소리는 나니까. 피아노를 무시하는 소린 아니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가 난다는 건, 더 잘 건드려야 한다는 기본 암시이자, 건드리지 않는 순간에도 음과 음 사이에 걸쳐있는 긴장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피아노는 음 하나 하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맛이 있다. 매우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질서가 거기 작용한다. 생긴 것부터 네모반듯하고 건반의 흑백 또한 명백하지 않은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엄격한 선생이나 때 맞춰 인사 드려야 하는 큰 어른 같기도 하다. 화사한 장식효과는 없지만, 공간에 안정감을 조성하는 맛은 있다.
가끔 집에 있는 연습용 피아노의 음 하나를 길게 누르고 있을 때가 있다. 무슨 대단한 연주를 해보겠다는 의도는 없다. 흐트러진 마음에 침을 놓듯 건반을 누르고 있으면 공간의 물성이 짐짓 변화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 음 한 음 나아가면 언젠가 나만의 멋들어진 소나타를 완성할 수 있을까. 물론 언감생심일 터. 그래도 건반을 누르고 있을 때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은 살면서 유일한 바로 ‘그때’라는 것. 일종의 각성 효과일 수도 있다. 건반을 누른다. 뾰족했던 마음이 은은한 공명 속에서 부드럽게 휜다. 일상의 한순간을 소중하게 담을 그릇 같은 게 허공에 어른거리는 것도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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