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 좋은데…" 비판에도 82억달러 들여 초고속 건설
쿠데타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집권 2년차 맞아 기반 다지고
국민에겐 애국심·희망 불어넣기
이집트 제2수에즈 운하가 지난 6일 개통됐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후 약 150년 만에 새 물길을 연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새 운하에 쏠리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물류를 잇는 핵심 바닷길이 확장 개통되면서 기존 선박 운항시간 감축 등 경제적 파급 효과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해 수에즈운하 개통식에는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비롯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등 6,000명에 달하는 외교 사절단과 경제계 대표들이 참석, 세계적 관심사임을 확인했다. 엘 시시 대통령은 이날 개통식에서 “제2수에즈 운하는 ‘전 세계인을 위한 선물’이라고 자랑했다.
제2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 수에즈운하청(SCA)은 지난해 8월5일 82억달러(약9조7,000억원)을 들여 제2수에즈 운하 착공에 나섰고 불과 1년 만에 개통에 성공했다. 당초 계획보다 공사기간을 3분의 1이나 앞당긴 초고속으로 진행된 것이다.
핵심 도시 이스마일리아를 중심으로 한 72㎞ 구간에 기존의 수에즈 운하와 평행하게 건설됐다. 그래서 수에즈 1ㆍ2운하 전체 폭은 기존 160~200m에서 317m까지 넓어진 셈이 됐고 깊이도 14.5m에서 24m로 깊어졌다.
운하 폭이 좁아 쌍방향 통행이 불가능한 구간이 있었는데 이번 새 운하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 SCA에 따르면 선박 한 척이 운하를 통과할 때 소요되는 시간은 기존 18시간에서 11시간으로, 선박 대기 시간은 11시간에서 3시간으로 대폭 단축된다. 또 통행 선박수가 현재 하루 평균 49척에서 2023년까지 97~99척으로 2배 가량 증가하고, 연간 수입도 12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이집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새 운하 건설로 일각에서는 ‘통행료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 유럽경제의 침체로 물동량이 예상만큼 많지 않아, 통행료 인상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집트 정부도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선박은 709척이며 통행료로 모두 3억2,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렇게 어려운데…
사실 이집트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다. ‘왜 굳이 이 시점에 제2수에즈 운하를?’이란 의문이 나올 정도다.
우선 경제 사정이 팍팍하다. 현재 이집트 정부의 공공부채는 국내 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하고 있으며, 연간 재정적자 역시 GDP의 11%에 달한다.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다. 외환 보유액은 22억달러에 불과한데, 이는 이집트의 4개월 치 수입액에 불과하다.
내수 경제 역시 사우디 등 걸프 산유국들로부터 연간 250억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겨우 지탱하는 상황인데, 최근 저유가 기조가 지속돼 지원국들의 재정형편도 악화하고 있어 언제 지원금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제 경제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중국 경기 약화로 인한 세계경제 동반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 경제 구조가 수출 위주에서 내수 서비스 위주로 개편되면서 세계 무역 성장이 정체된 상태며, 중단기적으로 화물선 통행량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의 아메드 카말리 경제학과 교수는 “제2수에즈 운하가 자체 생존력(경제성)을 갖고 있는 지 여부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채 건설 작업이 강행됐다”라고 비판했다.
국제 여론도 엘 시시 대통령에 호의적이지 않다. 엘 시시 대통령은 운하 개통식에서 “서방 국가들이 제2수에즈 운하에 추가 투자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엘 시시 정부가 직전 대통령인 모하에드 무르시와 그의 추종자 수백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데 대해 반감이 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세계 지도자들은 이집트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저 현 엘 시시 대통령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이슬람 수니파 과격단체 이슬람국가(IS)의 존재가 위협적이다. 이날 초 IS와 연계된 무장단체가 “이집트에 수감된 모든 무슬림 여성을 석방하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집트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IS는 지난 14일 카이로 시내에서 납치한 크로아티아인을 참수했다. 6월 말에는 검찰총장 히샴 바라카트가 IS 추정 차량폭탄테러로 사망하는 등 치안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시나이반도 북부에서 진행된 IS소탕 작전에서는 전투기까지 동원하고도 애를 먹었다.
특히 올해 새로 등장한 ‘혁명적인 처벌’이란 조직이 이집트 내 120여 곳에서 맹위를 떨치며 엘 시시 정권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동 안보전문가 길라드 바움은 “이 지역의 테러 위협이 터질 듯 끓어오르고 있다”라며 “살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저항이 이집트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수에즈 운하 건설을 강행한 것은 엘 시시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다지고 자신의 정부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엘 시시 대통령은 운하 건설을 통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규합하려는 것”이라며 “또 운하 건설이라는 충격요법을 통해 작금의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 시시 대통령은 2013년 7월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11개월 만인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엘 시시 정권은 이번 운하 건설 과정에서 전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했다. 또 건설 자금 중 일부는 8일간에 걸친 이집트 국민모금으로 이뤄졌다. 정부 관리자는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한 시민은 쌈짓돈을 아껴가며 80이집트파운드(약1만2,000원)를 기부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군사적 목적으로도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엘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는 최근 가장 위험한 테러 이데올로기와 맞서고 있다”라며 “수에즈 운하가 시나이 반도 내 IS의 테러로부터 이스마일리아 항구를 보호해 줄 방어기재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확장 개통을 앞두고 있는 파나마 운하 등 다른 운하들에 맞대응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장 내년 1월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마나운하 확장 공사가 끝나며, 2020년에는 니카라과 운하가 새롭게 개통될 예정이다. 상선이 가장 붐비는 곳으로 알려진 말라카 해협에서는 말레이 반도를 관통하는 ‘크라 운하’ 건설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2수에즈 운하 건설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론이 우세하다. 이븐 칼던 교수는 “이집트 정부가 국민 성금을 강조하면서 전 국민적 염원이 담긴 운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시적인 아사비야(asabiyahㆍ사회 연대 의식을 의미하는 아랍어)에 불과하다”라며 “엘 시시의 모험이 성공할 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수에즈 운하란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서쪽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운하다. 지중해 포트사이드와 홍해 수에즈 항구를 잇는다. 이 운하의 개통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수에즈 운하에 대한 구상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지중해와 홍해를 이어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했으나, 기술적 한계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후 19세기 중엽 페르디낭 드 르셉스(프랑스)에 의해 구체화 됐다. 르셉스는 당시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사이드에게 “이집트에 엄청난 정치ㆍ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전략물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고 사이드 총독은 이를 수용했다.
1854년 11월30일 착공, 15년 만인 1869년 11월 17일 개통했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한 총 길이 192㎞ 규모다.
당시 유럽과 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영국-싱가포르 간 항로의 경우,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갈 경우 거리가 2만4,000㎞에 이른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 1만5,000㎞로 절반 가까이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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