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여자친구와는 입사동기로 처음 만났고, 그 후 그녀가 이직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해 금세 친해지는가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돈을 쓰는 씀씀이가 저와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저는 꼭 필요한 것만 쇼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으면 사는 편입니다. 한 끼에 들이는 밥값도 저는 1인당 1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요즘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엔 꼭 가보길 원합니다. 본인이 일하는 부서가 마케팅 부서라 그런 것들을 자주 보고 접해야 한다는 얘긴데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데이트 비용도 공평하게 내고 있고요. 그녀가 카드빚 같은 건 아직 없지만 솔직히 결혼도 생각하는 입장에선 '저렇게까지 돈을 써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너무 속이 좁은 건가요?
A 돈이라는 건 정말 굉장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니까요. 이렇게 돈이 가진 양면성 때문일까요? 우리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혹은 더 나쁜 인간으로 몰락해 가기도 합니다. 또한 돈을 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죠. 함께 돈을 쓰면서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서로에 대해 실망스런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도 당신과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시청 근처의 회사에서 가까우면서도 치안이 좋은 광화문의 작은 오피스텔에 집을 구하려고 하던 때였는데,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가 월세 가격을 듣더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죠. '네 월급에 비해 그건 과소비다. 월세는 너무 아까우니 어떻게든 전세를 얻어야 맞는 거다'라며 왜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소비를 하는 거냐고 꾸지람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나름 친한 친구였는데, 그 때만큼 그 친구와 거리를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 친구와 저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이었거든요. 당시 수입의 절반 정도를 저축하는 저였지만, 나머지 남는 돈에 대해서는 철저히 나를 위해 쓰자는 게 제 생각이었고 치안이 좋은 동네의 쾌적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건 저에게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친구는 오로지 수입과 지출이라는 효용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두 분의 차이는 제가 제 친구가 함께 느꼈던 생각과 가치관의 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매우 비슷한 사건이라는 것이죠. 짧은 사연만으로 모든걸 알 순 없지만, 당신은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안정을 추구하는 쪽에 가까워 보이고, 반대로 당신의 여자친구는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워 보여요. 물론 현재의 행복이든 미래의 안정이든, 둘은 사람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모두 중요한 조건이죠. 현재 행복하기 위해서 미래를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테니까요. 어느 쪽이 더 중요하느냐, 어느 쪽을 포기하는 것이 옳으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우리 구태여 하지 말기로 해요.
다만 단순하게 상상해 본다면 이런 건 가능하겠죠. 당신이 갖고 있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이렇게 맘고생을 할 일은 없었겠지만, 당신이 정해놓은 그 효율성이라는 틀 안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지 모르죠. 만원이 넘는 밥은 절대로 먹지 않고, 좋은 곳에 가서 생각을 넓히는 일도 하지 않는 그런 삶이요. 반대로 당신의 여자친구도 자기와 경제관념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이렇게 낭비하는 사람 취급을 받진 않았겠지만, 한편으론 저축을 더 늘릴 생각은 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관련된 사람들의 태도일 겁니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너의 생각도 일리가 있고 나도 배울 점이 있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생각하지? 와~ 너 문제 있다'라고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거죠. 나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다른 가치 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과 서로 존중하면서 둘의 이상적인 원칙을 만들어 갈 것인가, 아니면 내 생각이 옳으니까 상대방을 어떻게든 내 생각과 같아지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만이 중요해진다는 겁니다.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당신이 원래 가졌던 그 생각대로 살길 원한다면, 안타깝지만 당신과 그녀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당신은 '내가 옳고 그녀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녀는 그저 자신의 수입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려 했던 것으로 보이니까요. 한 사람의 행복추구가 다른 한 사람에게 그저 '틀린 것'이나 '교화해야 하는 것'이 된다면 어떻게 그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겠어요? 연애가 아니라 두 사람이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결혼 관계라면 더더욱 힘들지 않을까요? 당신의 가치관과 조금 다른 생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대체 왜 저러지?'라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불편한 느낌에 대해 툭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솔직하게 당신의 걱정을 털어놓고 서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출이나 미래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두 사람은 결국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생각이 넓어지는 기회를 만들지, 아니면 '역시 우린 안되겠어'라며 포기할지를 말이죠.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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