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서점 괴산 숲속작은책방
전원주택 거실을 서점으로
직접 읽은 책과 엄선한 신간 배치
겨우 100명 남짓 사는 산골 마을의 작은 책방이 장사가 될까. 그런데 ‘책 쫌 판다’. 전국 동네서점 탐방기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 발행)를 쓴 백창화(50) 김병록(52) 부부의 숲속작은책방은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래 1,000명 이상이 다녀갔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에 자리잡은 이 작은 책방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먼 데서도 걸음을 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생계를 해결할 수준은 아니다. 첫해 매출은 고작 759만 3,000원. 한 달에 500권 파는 게 1차 목표, 1,000 권 파는 게 꿈이란다. 그날이 올까. 책 좀 팔리는 날을 꿈꾸며 부부는 전국 동네서점을 돌았다. 남들은 어떻게 버티는지,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이 책이 소개한 전국의 작은 책방은 68군데. 이 가운데 제목대로 책 팔아서 수익도 낼 만큼 성공한 데는 서울 마포의 땡스북스와 상암동의 북바이북 정도이고, 대부분 작은 문화행사나 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지 주인이 다른 일을 해서 보태어 유지하는 수준이다. 비교적 잘 된다는 집도 임대료 걱정을 완전히 떨칠 수 없다.
갈수록 책을 안 읽는다고, 책이 안 팔린다고, 출판사도 서점도 울상이지만, 이 작은 책방들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로 지역에 책의 향기를 뿌리며 유쾌한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동네서점이 죽어간다는 말은 통계가 입증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의 지역서점은 1994년 5,683개에서 2003년 2,224개, 2011년 1,752개, 2013년 1,652개로 급감했다. 서점이라지만 단행본은 없고 학습참고서나 문구류 파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런 가운데 작은 책방들은 바싹 말라가는 땅에 숨구멍을 내고 푸른 싹을 틔우는 오아시스다. 부산의 청소년인문학 서점 인디고, 홍대 앞 동네서점의 맏형 땡스북스, 제주도 시골 마을에서 여행객을 사로잡는 소심한책방, 충주의 중견서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책이있는글터 등 하나하나가 귀하고 사랑받을 만한 곳이다.
부부의 숲속작은책방은 한국에 없던 ‘가정식 서점’이다. 마당 딸린 전원주택의 거실 그대로를 책방으로 꾸몄다. 천정까지 닿는 책장에 부부가 직접 읽고 모은 책, 엄선한 신간을 정성스레 배치했다. 큰 축은 생태ㆍ자연ㆍ환경에 관한 책, 평화를 이야기하는 책이고, 집과 집 짓기, 마을 만들기, 노년과 죽음에 관한 책도 많다. 부엌과 다락방, 계단도 온통 책 차지다. 현관 입구 바깥 벽에도 책꽂이가 놓여 서점임을 알려준다. 책꽂이를 비롯한 가구는 남편 김씨가 직접 만들었다. 부인 백씨는 특히 권하고 싶은 책에 일일이 손글씨로 소개글을 써서 띠지를 둘렀다. 대형 책방의 매장이나 온라인서점에선 만날 수 없는 따뜻하고 친밀한 느낌이 각별하다. 주인이나 손님이나 책 좋아하는 이들이라 서로 반가워하며 책 이야기로 한참을 보내는 건 기본이다. 방문객이 책 1권 사는 것은 ‘의무’지만, 다들 ‘행복한 소비’로 여겨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꽃과 나무를 잔뜩 심은 마당의 작은 오두막 2채도 남편 김씨가 직접 지은 것이다. 어린이 책을 모아 놓았다. 아이들이 드러누워 흔들흔들 책 보면서 놀 수 있는 해먹이 걸려 있고 지붕엔 호박 넝쿨이, 그 옆에는 새파란 박 두 덩이가 제법 묵직하게 매달려 익어간다. 안에는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 같은 작은 소품이 책꽂이 여기저기 놓였다.
미루마을은 한 대학교 동창들이 만든 전원마을이다. 단독주택을 지어 분양했는데 57가구가 산다. 태양열과 지열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저탄소 녹색마을이기도 하다. 부부는 서울에서 10여 년간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책문화 활동을 하다가 4년 전 이곳에 내려왔다. 마을회관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려던 당초 계획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되자 살림집을 서점으로 만들었다. 책으로 가득 찬 작고 예쁜 집에서 부부는 사람들과 함께 책과 문화를 나누는 따뜻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슷한 실험을 펼치는 작은 책방들이 곳곳에 있다. 출판사와 손을 잡고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책들로 매달 ‘소박한 책장’ 코너를 운영하는 충주 주덕읍의 하늘문고, 책과 책방 이야기를 담은 부정기 잡지 ‘소소책방 책방일지’ 1호를 지난 달 선보인 진주의 헌책방 소소책방, 매달 4쪽짜리 아기자기한 책방신문 ‘달팽이 트리뷴’을 만드는 포항 재래시장 한 구석의 달팽이책방 등 여기저기서 작지만 의미 있는 반격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책값 할인율이 10%로 묶이면서 작은 책방들은 부족하나마 숨통이 트였다.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의 할인 경쟁에 치여 숨도 못 쉬던 것에 비하면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 이 작은 책방들이 문 닫지 않게 하는 힘이 책을 사는 손님에게 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괴산=글ㆍ사진 오미환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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