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스쿨 예정관 오늘 문열어, 청암고서 30여년 노하우 공개
김용옥·임권택·강부자·차범근 등 저명인사 정기적 재능기부도 주선
"부지런히 가르쳐 남기고 가는 게 돈 버는 것보다 더 재미있어요"
“‘언젠가는 고향에 기여하고 싶다. 내 재능을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이제야 꿈이 이뤄졌습니다.”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58)씨의 호를 딴 디자인스쿨 ‘예정관(藝丁館)’이 19일 전남 순천 청암고에 문을 연다. 이달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에게 ‘재능 기부를 위해 교실 한 칸만 내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커졌다”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된 예정관은 30년 넘게 한복을 지어온 그의 기술을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전수하는 공간이 된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순천여고를 졸업한 그가 모교 대신 청암고를 택한 것은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인연 때문이다. 2년 전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갔다가 청암고 학생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청암고는 국제기능올림픽 패션분야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 수상자를 배출한 지역의 패션 명문학교다.
김씨는 “지방의 낙후된 환경 속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이들의 안목을 높여주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를 섭외해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한복뿐 아니라 모자, 벨트, 가방, 신발 등 다양한 패션 분야에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연결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깨우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예정관은 상설 전시ㆍ교육 기부 행사장, 한복 명장 전수ㆍ실습실, 패션 디자인 실습실로 사용된다. 김씨는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저명인사들이 청암고에서 정기적으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할 예정이다. 이미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영화 감독 임권택씨, 탤런트 강부자씨,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 영화배우 채시라씨, 국악인 오정해씨,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씨 등이 재능기부 특강을 약속했다.
그의 구상은 단순히 교육기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정관은 그 디딤돌이다. 순천 시내 문화의 거리를 작은 공방의 거리로 만드는 게 김씨의 꿈이다. 그는 “요즘 디자인 업계가 너무 힘들다 보니 배워도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며 “공방이 차려지고 일거리가 생기면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도시 코모처럼, 그 가게에서만 살 수 있는 특색 있는 공예품을 만드는 작은 공방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순천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한창 잘 나갈 때 왜 서울을 떠나느냐”고 만류하지만 그는 “더 나이 들면 이런 정열이 식을 텐데, 내가 힘 있고 잘 나갈 때 가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광디지털대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는 “부지런히 가르쳐서 남기고 가는 게 돈 버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김씨는 순천 출신의 전통 인형작가였던 외삼촌 고(故) 허영 선생의 권유로 1984년 한복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호 ‘예정’은 외삼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 해외에서만 50여차례 패션쇼를 열면서 한복을 세계에 알렸다.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토지’, ‘황진이’ 등 20편의 작품에서 한복 제작을 맡기도 했다.
19일 예정관 개관 기념으로 김혜순씨의 한복, 매듭공예 명인 심영미씨의 매듭, 허영 선생의 전통인형이 특별전시 된다. 전남교육청도 지역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기부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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