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 공간에 본채·별채 나누고 방을 채 단위로 만들기도
방 수직·수평 확장해 기능 결정
삶의 지향점으로서 '최소' 싸고 건축 전문가들 포럼서 열띤 토론
핵심은 적정 공간 능동적으로 찾기
아파트가 더 이상 재산증식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 획일적 공간의 비루함에 눈뜨게 되었다. 개성은 말살되고, 라이프스타일은 무시되며, 삶의 주요 장면-생로병사-은 집 밖으로 가차없이 아웃소싱된다. 증대될 가치를 기대하며 ‘지금의 삶’을 한없이 유보해 왔건만, 밑변 길이가 몇 평 늘어난들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납작한 정방형의 구조 속에 선제적으로 구획된 공간들은 거주자의 삶과 겉돌고, 이 부피감 없는 복제공간에서 집주인은 대체로 주체가 되지 못한다. 집 짓기 열풍,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형 주택 짓기 붐이 일고 있는 이유다.
젊은 건축가들이 모여 새로운 주거의 대안을 모색하는 장기 전시 프로젝트 ‘최소의 집’이 반환점을 돌았다. 정영한아키텍츠의 정영한 소장이 기획해 2013년 10월 시작한 이 전시는 회마다 3인의 건축가가 참여해 매년 두 차례씩 열렸다. 이달 17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의 다섯 번째 전시를 마감하며 참여 건축가 15인의 강의와 전문가 포럼을 부대행사로 진행했던 ‘최소의 집’은 답보다는 질문이 명확한 전시였다. 삶의 지향으로서의 최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건축가 각자의 건축물을 통해 묻는 이 전시는 자기만의 집을 꿈꾸는 이들에게 질문을 되던진다. 단지 작은 집도, 싼 집도 아닌 집. ‘당신에게 최소의 집은 어떤 집입니까?’
왜 ‘최소의 집’인가
‘땅콩주택’을 필두로 들불처럼 번진 작은 집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거 형식으로 마땅한가. ‘아파트 값 절반으로 내 집을’, ‘10평짜리 집 20평처럼 짓기’로 선전되는 협소주택은 혹시 아파트라는 복제공간을 장기불황이라는 시대의 버전에 걸맞게 번역해 놓은 새롭게 획일적인 공간 아닐까. 작은 집을 ‘더 싸지만 더 넓은’의 마법이 구현된 공간으로 인식하는 세태는 ‘젊은 건축주, 적은 예산, 작은 규모’라는 낯선 조건과 맞닥뜨리게 된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겼다. 전시를 기획한 정영한 소장이 “최소라는 가치를 통해 각자의 경제규모에 따른 삶의 방식과 그에 맞는 적정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자율적으로 선택해야 하며,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가변화할 집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최소란 각자에게 적합한 생활공간을 추출해내는 하나의 단위인 셈이다.
2014년 완공된 영종 신도시 운서동의 앵두집(4회 전시작)은 30대 젊은 부부가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이층집이다. 부부는 무려 A4용지 16장 분량의 위시리스트를 들고 건축사무소 삼간일목의 권현효 소장을 찾아왔다. 예산은 2억원. 아이가 자라 뛰어놀 마당이 있어야 하고, 친구들이 놀러오면 머물 게스트룸과 차고, 대청도 필요했다. 건축면적은 93.25㎡(29.7평). 오랜 고민 끝에 최소한 이 정도는 반드시 갖춰야 하는 곳과 장차를 위해 비워놓아도 무방한 곳으로 공간이 분리됐다. 큰 앵두와 작은 앵두가 함께 매달린 앵두 열매처럼 생활공간 본채와 홈카페, 작업실, 게스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별채로 나눠졌다. 별채는 본채가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욕망-비생산적이거나 머뭇거리는 욕망-들을 만족시켜 주는 판타지의 공간이 됐다.
그런데 30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 별채를? 공간을 나눔으로써 두 공간 사이에 관계가 발생하고, 그 관계가 또 하나의 공간이 된다. 본채와 별채 사이에 데크를 깐 마당은 하늘이 열린 방이 되어 아이가 건강한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채의 분리는 비용문제도 해결해줬다. 본채는 건물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비용을 과감히 투입했고, 별채는 차후 집주인이 채워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비워두며 비용을 최소화했다.
건축사무소 JHW 이로재의 정효원 소장이 설계한 전북 순창군의 ‘숲과 집’(5회 전시작)은 아예 방을 채의 단위로 흩트려놓았다. 건축주는 은퇴를 앞둔 대학 교수로 자연에 동화된 삶을 살길 원했다. 숲 속에 조심스레 얹은 집에는 마당이 없고, 자연이 낸 길 외엔 진입로도 따로 없다. 각각의 방과 화장실을 별도의 채로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침실채를 나와 숲을 가로질러 화장실채로 가야 한다. 공간의 집적에 반하는 집이다. 덕분에 방과 방, 방과 숲, 숲과 숲 사이의 관계는 적극적으로 가시화된다.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최소의 집’
삶에 맞춤 제작된 집이야말로 최소의 집이다. 잉여의 욕망 덜어내기, 반드시 필요한 것 고수하기.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집은 최소를 단지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한 저항을 요구한다.
BP 아키텍츠의 이영조 소장이 지은 제주 감귤밭의 ‘리틀 화이트’(5회 전시작)는 육지에 사는 건축주의 주말주택이다. 단출하지만 완전한 주택의 기능 또한 구현해야 하는 집이다. ‘확장된 큰 방’ 안에 방, 거실, 부엌, 화장실의 기능을 담되 가구를 최소화함으로써 공간의 유연성을 살렸다. 높낮이를 달리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획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툇마루를 소파처럼 이용하는 식이다. 접이식 캠핑의자나 매트리스로 유연하게 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게 비워둔 이 집은 내부를 비움으로써 외부(자연)를 충만하게 들일 수 있는 감각적으로 호사로운 ‘최소의 집’이다.
스튜디오 ANM의 김희준 소장이 지은 강원 평창의 산 속 암자 ‘정?방’(1회 전시작)은 집의 원형을 방(房)으로 규정한다. 수도자를 위해 지은 넓이 18㎡, 높이 6m 크기의 이 집은 가로, 세로 각각 2.7m 크기의 방을 중심으로 앞뒤에 툇마루, 좌우에 각각 주방과 화장실을 뒀다. 천장은 높이가 6m로 다른 부분보다 돌출되어 있는데, 돌출된 틈새로 띠 창을 둘러 빛과 외부 풍경이 방 안으로 빗겨 들어오도록 했다. 방의 기능을 선제적으로 고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건축가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수직이나 수평으로 방을 확장하며 스스로 공간의 기능을 결정하고 쓰임새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정영한 소장은 ‘9x9 실험주택’(1회 전시작)을 통해 “건축이 최소한으로 개입한 공간”을 최소의 집으로 정의했다. 경기 양주에 위치한 화가의 작업실인 이 실험주택은 유리온실을 중심으로 나눈 네 개의 작은 공간에 여닫이 유리벽(무빙월)을 설치한 덕분에 벽의 개폐에 따라 공간의 용도가 유연하게 결정된다. TV가 있으면 거실, 책상이 있으면 서재 식으로 가구에 의해 공간이 정의되는 전형성에서 탈피, 가변적 유리벽을 통해 공간의 성격을 사용자의 임의대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건축가마다 최소의 정의는 다르지만 ‘최소의 집’ 전시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 “제한된 주거의 물리적, 경제적 환경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맞는 적정 공간의 크기를 능동적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정 소장은 “‘최소의 집’ 전시가 자신의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라이프스타일까지 반영한 집을 찾게 해주는 가이드의 역할과 동시에 대중들이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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