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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대로 잊을 것인가

입력
2015.08.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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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천안함 당시의 논란을 감안하면 초기 대응은 도리어 차분했고 이성적이었다. 북한 소행이라는 심증에도 불구하고 현지 부대와 중앙 조사단을 순차적으로 현장에 파견해 지뢰의 잔해물을 수거ㆍ분석하는 등 침착하게 움직였다.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유엔군 군사정전위와 함께 이틀간(6,7일) 현장조사에 나서 최종적으로 북한군 소행임을 결론지은 다음 청와대에 보고한 과정도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

정부와 청와대의 뒷북대응 또는 콘트롤타워 혼선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지만 남북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투 트랙 대북기조’라는 점에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방부 공식 발표 이후 연이어 ‘단호한 대응’과 ‘대화 재개를 통한 평화 구축’을 분명히 밝혔다.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단호한 대처와 남북 교류의 필요성을 병립시키며 유연한 입장을 천명했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을지훈련 시작 당일(17일) “북한 지뢰는 명백한 도발”이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고 비판하지만 군사훈련에 맞춘 메시지라는 점을 외면한 과도한 논란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국방과 안보의 최후 보루이자 트로이카인 박 대통령과 김관진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장관은 지뢰라는 새로운 형태의 북한 도발에 너무도 안이했다. 보고와 대응조치, 사후 관리에서 콘트롤 타워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고 이튿날인 5일 김관진 실장으로부터 ‘북한의 목함지뢰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김 실장은 그 날 저녁 또 한번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9일 오후에는 국방부 향후 조치 등을 서면으로 올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다리가 잘려나간 수색대원들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등은 알려진 바가 없다.

모두 4차례의 대통령 보고는 서면과 유ㆍ무선 구두보고였다고 한다. 적의 공격으로 아군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어쩌면 이리도 침착할 수 있을까 싶다. 상식과 도리에 비춰보면 NSC 상임위원회가 개최된 8일 전후로는 국방부 장관을 불러 자초지종을 살폈어야 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대면보고를 저어한다 해도 서면과 유ㆍ무선 보고로 책임을 다 했다는 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의 행보도 납득하기 어렵다.

NSC와 국방부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며 대응조치로 들고 나온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실효성도 의문스럽다. 주민들의 동요를 우려한 북한 당국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심리전 수단이라는 설명이지만 당장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고정된 확성기를 집중 타격하겠다고 위협하자 이동식 확성기를 운영하겠다는 국방부의 뒷북대응도 영 개운치 않다.

이번 사건은 애당초 경계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일이었다. 국방부는 사고가 발생한 지역을 포함한 판문점 일대에 최신예 열상감시장비(TOD)을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TOD는 열을 이용해 적의 동향을 감시하는 장비로 야간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국방부가 공개한 사고 당시의 TOD 영상을 보면 수색대원들이 포복으로 후퇴하는 장면까지 또렷하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북한군 지뢰매설 장면을 놓친 이유에 대해 “수목이 우거져 감시 장비로 보기에 매우 제한적”이라며 ‘경계실패’가 아닌 ‘경계공백’으로 발뺌하고 있다. 북한군이 앞서 DMZ 인근에서 수목제거 작업을 벌이며 이상행동을 보일 때도 국방부는 ‘교란 작전’에 불과하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국방부의 이런 인식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에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현실은 놀랍지도 않다.

박 대통령이 사고 발생 열흘 만에 부상 장병 2명에게 전화로 위로했다는 소식도 아쉬울 따름이다. 대통령이 찾아가 병문안을 한들 두 하사의 다리가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군통수권자가 직접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면 국가를 위한 이들의 헌신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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