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끝에 ‘씨’라는 상투적 경칭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당신의 부친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꼬박꼬박 그저 ‘사랑스런 예쁜 딸’이라는 뜻의 말을 당신 자매의 전용어처럼 ‘영애’라는 수식어로 붙이도록 하는 데에 익숙했으니 이런 호칭이 스스로 어색합니다. 그런 시대에 살았는데, 지금 또 당신 자매를 통해 부활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이 여러 언론에서 사용되더군요. 어쨌거나 우리는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게 많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통해 대한민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넘치는 나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일본의 한 포털 사이트와 인터뷰한 내용은 그야말로 경악할 것들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일본에 대한 향수와 호의가 당신의 사고에 그런 영향을 미쳤겠지요.
왜 자꾸 사과하라 하느냐, 위안부와 징용된 이들에 대한 보상을 자꾸 요구하는 게 부끄럽다 했는데 그 근본원인은 당신의 부친이 제공한 것이었지요. 쿠데타 이후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의 돈이 필요해서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급히 서두르며 세세한 내용들을 당사자들 무시하고 멋대로 퉁쳤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미쓰비시가 미국인에 사과하고 중국인에게 사과와 배상도 하면서 정작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과 한국인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들로서는 한일협정 때 다 퉁친 건데 왜 자꾸 들먹이느냐 짜증내는 거지요. 그러니 당신은 가족을 대표해서 그 문제에 대해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염장 지르는 말만 뱉었더군요. 아마도 당신 가족의 사고가 결국 사고를 친 셈이겠지요.
언론도 미쓰비시 사건에 대해 일본과 그 회사만 비난하며 반일감정이나 북돋는 짓만 일삼지 정작 그 원인이 당신 부친이 빚어낸 한일협정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점은 짐짓 외면하더군요. 그러니 온통 당신들 편이라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어쨌거나 당신은 ‘당신의 신념에 따라, 용기 있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그게 옳건 그르건, 국민의 감정에 어울리건 어긋나건 간에.
놀랍게도 당신에게 대놓고 따지거나 비난하지 않더군요. 입장을 바꿔 만약에 당신 언니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당신과 비슷한(물론 당신의 발언 근처에도 못 미치겠지만) 발언을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당신들 자매를 유난히 사랑하는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단체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어 규탄대회니 뭐니 하며 난리가 났을 것이고, 정권 눈치 보는 데에 이골 난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집이나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하면서 기소하는 등의 호들갑을 떨었을 겁니다. 종편을 비롯한 수구언론은 환호작약하며 한 달 넘게 씹고 또 씹었겠지요. 그러나 ‘성숙한 대한민국의 언론, 검찰, 보수단체’는 애써 침착했습니다. 하기야 당신의 언니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게 중요한 지침인지도 모르지요. 당신의 언니 또한 자라면서 부친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평가를 듣고 자랐으니 어쩌면 당신과 생각이 같기 때문에 함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그 무모한 용기를 존경합니다. 당신이 일으킨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임을 새삼 확인시켰으니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쫄지 않고 마음껏 말해도 되겠군요. 자기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협박하고 감시하는 이들도 최소한 당신과의 형평성은 유지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의 발언 내용이 형편없고 균형 감각도 없으며 무엇보다 역사의식이 결여됐을 뿐 아니라 당신 가계의 왜곡된 삶과 사고형성에 근거한 것이라 해도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너무나 성숙해졌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 대한민국이니까요.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자부심 새삼 일깨워주셨으니 거듭 고맙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자랑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음을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김경집 인문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