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민들은 여야갈등보다는 새누리당내 친박과 비박,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와 비노라는 계파갈등에 더 친숙해졌다. 이는 야당의 무능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의회정치가 여야간 경쟁보다는 계파간 갈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후진적인 한국정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파논리와 이익은 국가, 의회, 정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정을 논하는 국무회의에서 계파논리를 대변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이후 진행된 유승민 사태는 한국의 정치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권력분립에 기반한 대통령제하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본연의 기능이자 당연한 것이지만, 계파논리는 본연의 의회정치마저 부정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지뢰도발과 관련된 청와대와 행정부의 엇박자 대응에 대해 여당의원이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을 같은 여당의원이 “아군진지에 설탄(舌彈)을 쏟아”내었다면서 비난한 것은 계파논리가 정당과 의회의 기능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정치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정당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당론보다는 계파이익을 따르거나, 계파갈등으로 당론마저 결정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러면 정당은 사라지고 계파정치만이 남게 된다. 당론으로 결정한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 계파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현실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둘러싸고 잠재화되어 있는 계파갈등을 드러낸 것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위 활동을 통해 정치개혁의 대안을 제시하고 당을 재정비하려고 했지만, 비노측에서는 이를 문재인대표를 보호하고 친노패권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계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계파논리는 정치개혁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각 당이 계파정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안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권역별 비례대표안은 나름 개혁의 결과물로 제안되었다. 이 두 가지 안을 동시에 빅딜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여야는 물론 각 당 내부에서도 합의되지 못한 채 비판만 존재하고 있다. 정당의 입장이 없고 계파와 개인의 견해만 우후죽순 발표되고 있다. 정당은 사라지고 계파정치만 난무하는 형국이다.
현대 정당정치에서 ‘파벌’ 혹은 ‘계파’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파는 이념과 정책의 원인이자 결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야지, 특정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패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과 정당보다 파벌정치가 중심이 되어 부정부패와 정치불신을 낳았던 과거 일본의 정당정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최근 보여지고 있는 계파갈등은 이념과 정책,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대립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힘겨루기에 불과하다. 계파정치가 국가이익, 의회정치, 정당정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정치현실은 역설적으로 정치개혁의 시급함을 보여준다. 계파정치는 정당내부의 산물이 아니라, 정당과 선거제도가 가져온 결과이다. 따라서 정당개혁과 선거개혁으로 정당정치를 정상화하는 것이 계파정치를 극복하는 첩경이다. 계파정치 뒤에는 기존 정치인의 기득권 구조와 이익이 있다. 이러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정치개혁은 진전되기 어렵다. 민주적인 공천제도를 보장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정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양당독점적인 기득권구조를 바꿔야 한다. 계파이익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합리적인 당론결정과정을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여야가 합의하여 정당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김용복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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