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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시절 셰프의 손맛 혹평한 대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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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시절 셰프의 손맛 혹평한 대가는

입력
2015.08.1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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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풀 꺾인 2010년 이맘때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인근에 위치한 ‘를레 루이 트레즈(Relais Louis 13)’에서 견습생 신분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점심영업을 마치고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스토브를 닦는 일은 언제나 나 같은 견습생의 몫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쉬러 나가려는 찰나 셰프가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손에 들려진 접시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엉성한 고등어 스시가 너댓 개 담겨있었다.

“오늘 저녁 특별한 손님에게 제공될 스시인데 너희들이 먹어보고 어떤지 말해줘.”

당시 주방에는 40대 중반의 일본인 남자, 싹싹하게 일 잘하는 여성 파티셰인 사토미,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의 동양인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우리 동양인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온 듯했다. 그 자존심 높은 셰프가….

일본인 남성: “맛있는데요!”

사토미: “좋아요, 셰프.”

드디어 내 차례. 한입 물어보고는 일본인들은 참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했다. 일반인이 인터넷 레시피로 처음 만든 스시, 딱 그 수준이었다. 어렵사리 운을 뗐다.

“음…, 밥이 약간 질고 식초가 좀 더 첨가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고등어가 조금 두꺼운 듯해요.”

예상치 못한 혹평에 셰프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되받아쳤다.

“그럼 네가 5인분 준비해놔. 5시까지!”

말투는 신경질적이지도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스시보다 못한 걸 올렸다가는…. 한번도 내 손으로 스시를 쥐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셰프의 스시를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기억을 유추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먼저 밥 알갱이가 살아있게끔 밥을 지어 식혀 놓는다. 식초, 설탕, 소금을 섞어 초대리를 만든 후 고등어를 한입 크기로 저며 놓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밥에 초대리를 섞어 손으로 적당한 크기로 쥐어 샤리(초밥용 밥)를 만든다. 와사비를 살짝 바르고 그 위에 고등어를 덮어 살짝 눌러주면 완성! 어렵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 쌀을 불리고 밥을 짓는 데만 벌써 1시간 넘게 소요됐다. 남은 50분 안에 모든 공정을 완수해야 한다. ‘한식대첩’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난 숙련된 일식 요리사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시간에 맞추어 완성했지만, 3만원대 뷔페식당의 초밥코너에 있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5시. 셰프는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스시를 입에 댔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걸 종종 목격해온 탓에 몸이 먼저 그렇게 반응했다.

5초간 정적.

“나쁘지 않네.”

그 한마디 하고는 주방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프랑스 유학시절 중 가장 긴장된 하루였다. 그날 먹은 거라곤 고등어 스시 2점이 전부였다. 긴장한 나머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 12시까지 근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주방 분위기는 욕설과 폭력(밀치고 집어 던지는)이 난무하는 파리에서도 고되기로 악명 높았다.

그러나 클래식 요리의 거장답게 요리 하나하나가 훌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식당에서 먹었던 스위트브레드(송아지나 어린 양, 돼지 등의 가슴샘이나 췌장으로 만든 고급 요리)는 아직도 내게 최고의 프렌치 요리로 남아있다. 지옥과 천당을 경험하게 한 셰프 마뉴엘 마르티네씨의 요리가 가끔은 그립다.

*노진성 셰프는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인 파리의 ‘를레 루이 트레즈’를 거쳐 현재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셰프로 근무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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