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장선출방식을 두고 학내 갈등이 일고 있는 부산대에서 한 교수가 직선제 폐지를 반대하는 장문의 글을 남긴 채 대학 본관에서 투신해 숨졌다. 김기섭 총장은 교수 사망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간선제로 추진하던 차기 총장 후보 선출 절차를 모두 중단시켰다. 하지만 교육부는 간선제를 유도한다는 방침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어서 부산대 총장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17일 오후 3시 5분께 고현철(54) 부산대 국문과 교수가 이 대학 본관 4층 국기게양대에서 “총장은 약속을 이행하라”고 외친 후 투신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고 교수는 투신 전 자신의 심경을 담은 장문의 글을 A4용지에 복사해 뿌렸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는 제목의 글에서 고 교수는 “부산대 총장이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총장 직선제를 포기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총장 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며 “부산대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라고 밝혔다.
고 교수는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 여러 교수들이 교수총투표를 통해 뜻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다”며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는데도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며 “대학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로서 중요하고 부산대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고 투신 배경을 설명했다.
고 교수의 사망 소식에 서울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학교로 복귀한 김기섭 총장은 보직교수들과 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이날 오후 9시 55분께 대학 본관 앞 교수회 농성장을 찾아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사퇴한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또 간선제로 추진하던 차기 총장 후보 선출 절차를 모두 중단시키고 대학본부가 교수회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차기 총장을 간선제로 선출하는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총장선출방식을 둘러싼 김 총장과 부산대 교수회의 갈등은 지난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총장이 직선제를 폐지하고 총장추천위원회(간선제)를 통해 차기 총장을 뽑겠다고 밝히자 교수회가 총장실 일부를 점거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후 김 총장은 총장선출방식 결정을 위해 교수총투표 등을 따르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아 갈등이 지속됐다.
부산대가 총장선출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교육부는 간선제 유지 방침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교육부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산대가 직선제를 유지할 수 있으나 교육부의 행ㆍ재정적 압박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직선제의 폐해가 크고 간선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부산대 갈등이 잘 봉합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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