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톈진(天津)시 탕구(塘沽)항 폭발사고에서 최소 수백 명의 실종ㆍ사망자를 발생시킨 주범은 시안화나트륨(NaCN)이다. 폭발로 창고에 있던 시안화나트륨 700톤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인명피해가 커졌다. 시안화나트륨은 산(酸)이나 이산화탄소와 반응하면 시안화수소(HCN)를 발생시킨다. 시안화수소는 나치수용소에서 포로학살에 사용된 독가스다. 시안화합물 중 하나인 시안화나트륨은 10kg 정도면 2,000명에 가까운 인명을 살상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물질이다.
▦ 시안화합물 중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것은 청산가리(靑酸加里)라고 불리는 시안화칼륨(KCN)다. ‘청록색’이란 뜻의 ‘cyan’의 영어발음은 ‘사이언’이지만, ‘시안’이란 일본식 음가(音價)가 아직 우세하다. 가리(加里)는 칼륨의 약칭인 칼리(Kali)의 음역(音譯)이다. 시안화합물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청색을 띤다고 붙은 이름인 모양이다. 시안화합물은 금속의 정련이나 표면처리, 과수의 해충구제 등에 쓰인다. 국내에서는 청산가리가 섞인 밥 색깔을 이상히 여긴 남편의 신고로 아내가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 오래 전 시골에서는 꿩이나 토끼 사냥에 ‘싸이나’라고 불린 청산가리를 썼다. 노란 메주콩을 반으로 자른 뒤 홈을 파서 싸이나를 넣고 촛농이나 밥풀로 붙여 꿩과 토끼가 자주 출몰하는 산기슭에 뿌려둔다. 나중에 부근을 돌며 이 콩을 먹고 죽은 꿩이나 토끼를 주웠다. 물고기를 잡을 때도 싸이나를 사용했다. 대신 요리를 할 때는 반드시 내장을 제거했다. 1960년대 기사를 보면 싸이나로 꿩을 잡은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물리기도 했고, 생활고를 비관해 싸이나를 먹고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 톈진 사고 이후 청산가리 괴담이 돌고 있다. SNS와 메신저를 통해 독극물 비나 미세먼지를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최근 수도권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서울과 인천지역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자 나온 괴담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비는 중국에서 이동한 비구름에서 내린 것이 아니고, 여름에는 통상 남동풍이 불기 때문에 한반도 북서쪽에서 화학물질이 이동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폭발로 인해 대부분의 시안화나트륨이 연소되어 흩어지면서 800km나 떨어진 곳까지 오기는 어렵다니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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