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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기꺼운 당혹

입력
2015.08.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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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엘 갔다. 후배가 가자기에 아무 정보 없이 그냥 따라갔다. 날씨는 후텁지근했으나 전시회장 내부는 서늘했다. 주로 설치작품이었다. 흰 벽면에 흑백 영상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기기묘묘한 3차원적 공간이 펼쳐졌다. 무슨 태초의 평원이거나 다른 별의 표면 같은 영상도 넓게 펼쳐졌다. 희뿌연 수증기 안에서 인조 나무 하나가 계속해서 회전하는, 약간은 귀기 어린 작품도 있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두어 차례 오르내리며 작품이 눈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서 감상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버리니 작품들이 물성 자체로 친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의도와 설정 등에 대해선 일부러 무지하기로 했다. 어두운 허공에 수 백 개씩 매달린 작은 스피커가 각기 다른 소릴 내는 공간에선 약간 혼란스러웠으나 그저 흘러나오는 소리를 별 뜻 없이 흘려 들었다. 애국가가 나오기도 하고, 이상한 대화소리도 들렸다. 따지고 보면 일상에서의 소리들이 저렇지 않나 싶었다. 맥락 없이, 또는 소리 내는 이의 맥락만 스스로에게 분명한, 청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소리들. 한 시간 여 만에 전시회장을 나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같은 거리가 한 시간 사이를 두고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다. 문득, 이 비는 누가 설치한 작품일까, 생각했다. 곁에 있는 후배를 봤다. 짐짓 외계인 같았다. 그 당혹감이 은근 정겨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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