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치매는 더 이상 병(病)이 아니에요. 우리 집 안의 일이 랍니다.
참으로 유쾌한 시간이다.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95분은 훌쩍 지나간다. 극은 시작부터 중간 중간 여기저기서 비집고 나오는 웃음소리로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어서 눈치 봄도 없이 터져 나오는 박장대소는 바이러스 되어 극장 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어느덧 커튼콜을 마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손에는 너나할 것 없이 흠뻑 젖은 손수건이 들려져 있다. 이달 20일부터 대학로 한성아트홀에서 개막되는 연극 <러브스토리>의 관극분위기를 100자 이내로 정리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이 연극은 노인성 치매를 작품의 소재로 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사회에서 어느덧 노인성치매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 되고 말았다. 현대의학에서도 불치병으로 분류되고 있는 노인성 치매. 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수명은 나날이 길어지고 있지만 현대의 질병 역시 그와 반대로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아이러니이다. 더욱이 노인성치매는 노령화 사회의 최대 적으로 부상하여 우리네 가정과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아니던가.
연극 <러브스토리>는 노인성치매에 관한한 그 어떠한 의료인의 말보다도 한 권의 책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인생의 과정 속에서 혹여 치매의 예방이 어렵다면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극이 가진 예술의 힘, 연극의 힘, 아트 테라피(Art Therapy)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10여 년 전에 보았던 영화 [노트북(닉 카사베츠 감독)]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노인성치매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종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치매를 다루어 왔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네 정서로 재창작된 치매극복 연극 <러브스토리>가 예의 유쾌함과 따듯함으로 연극 애호가들을 찾아온다.
연극 <러브스토리>는 참으로 건강한 연극이다. 가슴 따듯한 착한 연극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네 부모님의 보편적 삶의 여정과도 무관치 않은 노인성치매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자식을 낳고 키우며 공부 가르쳐 시집장가까지 보내는 것이 우리네 부모님들의 피할 수 없는 전통적 역할과 소명이 아니던가.
그렇듯 한 평생을 살아 왔으니 오랜 기간 우리네 부모님들의 마음고생과 스트레스는 가늠조차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비로소 자식들이 성장하여 이제는 한시름 놓아도 될 즈음…, 치매는 어김없이 나와 우리 이웃의 부모님들을 찾아든다. 그것도 가벼워진 삶의 무게만큼이나 서서히 소리 없이 아주 가녀린 징조와 함께. 그저 가죽만 남아 까칠해진 피부와 구멍 난 뼛속마저도 마땅치 않은 듯 마지막 남은 한 주먹의 뇌마저도 조여 오며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몹쓸 놈의 치매. 그 치매란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네 부모님들의 지난 추억과 회한마저를 깡그리 지워내듯 구겨버리듯 뇌를 쪼그라트리며 가정과 사회에 평화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연극 <러브스토리>는 당장의 우리 이야기이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노래이기도하고 자식과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황혼녘 마지막까지도 뜨거운 삶을 살아내며 서로가 서로를 지극히 위하는 우리네 부모님의 구구절절한 부부애이기도 하고 그 분들의 지고지순한 순애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극은 참으로 착하고 건강한 연극이라 아니 할 수 없다.
2013년 초연이후 3년여를 이어오고 있는 연극 <러브스토리>는 이번 공연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농밀함을 한 층 더 배가 했다. 중량감 있는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 만반에 준비를 마치고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다. 막바지를 치닫고 있는 연습실의 분위기는 치열하다. 아니, 엄숙함을 넘어 비장하다. 웃김조차 코끝을 찡하게 하니 누구하나 소리 내서 웃지도 못한다. 오직 진정성으로 관객과 만나겠다는 연출자의 일성이 가히 작품의 깊이와 완성도를 짐작케 할 뿐이다.
13년 만에 무대로 돌아 온 배우 한인수(68)가 박수일 역을 맡아 관객들의 누선을 책임질 모양이다. 그의 명료한 화술과 진지한 움직임은 연습실을 압도하며 보는 이들의 숨을 죽이게 한다. 그리고 무대와 방송을 꾸준히 넘나들며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던 김민정(67)이 그의 아내 김순애를 맡아 치매노인 역을 맛깔스럽게 소화해낸다. 더할 나위없는 앙상블이다.
그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수일과 순애의 첫 만남 등 청춘시절은 유쾌하고 청량하기 그지없다. 박신마 한이주 (더블배역 백승모 김로정) 등이 펼쳐내는 젊은 날의 회상장면은 7080이전의 복고풍으로 웃음과 볼거리를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작품이라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내와 대본을 함께 읽으며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내의 강권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박수일 역의 한인수)"
"더 이상 노인성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머지않은 날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고요. 한데 조심스레 대본을 펼쳐보니 너무나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 놓았더라고요. 끄트머리의 감동은 기본이고요. 오래간만에 만난 좋은 작품이다 싶어 기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김순애 역의 김민정)"
특별히 이번 공연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고사 직전에 놓여있던 공연계를 위해 정부가 전격적으로 지원하는 '1+1'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알뜰한 관람이 될 듯싶다. 1인의 관람료로 2인이 함께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 연이은 사건사고로 많은 이들이 공허함과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이즈음, 연극애호가는 물론 많은 소시민들이들이 연극 <러브스토리>를 통해 힐링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달 20일부터 10월 18일까지 대학로 한성아트홀(1관).
작‧연출 김경미, 한인수 김민정 박기선 김계선 이윤상 등 출연.
관람료 R석 5만원, S석 3만원. 문의 010-772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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