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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안 돈다… 투자처 못 찾고 갈수록 '돈맥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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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안 돈다… 투자처 못 찾고 갈수록 '돈맥경화'

입력
2015.08.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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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저성장에 투자심리 위축

MMF·CMA 등 위험 적은 단기 투자상품에만 돈 몰려

자금 회전 속도도 사상 최저… 외부 충격에 변동성 커질 우려

시중 부동자금이 올해 상반기에만 90조원 늘면서 900조원에 육박했다. 저성장ㆍ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자금이 갈수록 쌓여만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게 될 하반기에는 부동자금 규모가 1,000조원에 육박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국의 유동성 확장 정책에도 투자위험이 적은 단기 상품에만 돈이 머물면서, 우리 경제의 돈이 돌지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하는 형국이다.

돌지 않고 쌓여가는 돈

16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88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794조7,000억원)보다 89조7,000억원 늘어난 사상 최대치다. 내역별로 보면 현금이 69조원이었고, ▦요구불예금(164조6,000억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414조3,000억원) ▦만기 6개월 미만 예금(71조7,000억원) 등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예금이 650조6,000억원이었다. 단기 실적배당형의 준(準)예금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잔액도 각각 74조8,000억원, 41조원에 달했다. 상반기 주식시장 활황 속에 증권사 투자자예탁금도 지난해 말 16조원에서 22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자금 회전속도는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현금 및 단기예금에만 돈이 괴면서 정작 자금이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시중자금 회전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통화승수는 지난해 1월 20.0배에서 올해 6월 말 18.2배로 사상 최저치를 보였다. 2010년 이후로 시계를 넓혀보면 최고치(2010년 4월 25.0배) 대비 27.2%나 떨어졌다. 본원통화 대비 광의통화(M2)의 비율로 측정되는 통화승수는 일정 기간 중앙은행이 푼 돈이 시중은행을 거쳐 몇 배의 신용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돈이 활발하게 돌수록 수치가 상승한다. 또다른 자금회전속도 지표인 예금회전율(예금계좌 평균잔액 대비 인출누적액의 배수) 역시 2010년 4.4에서 지난해 3.8로 낮아졌다. 가계나 기업이 예금만 할 뿐 그 돈을 꺼내 다른 용도로 쓰는 일이 줄고 있다는 얘기다.

“저금리ㆍ경기부진에 대기자금 늘어”

부동자금 급증은 기본적으로는 지난해 8월 이래 네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한은의 유동성 확장 정책의 영향이 크다. 시중 통화량이 빠르게 늘다보니 부동자금의 절대적 규모 역시 커진 것이다. 문제는 저조한 자금회전 지표가 보여주듯 부동자금이 유동성 증가 속도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통화량(M2 기준) 규모는 전년 말 대비 8.1%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부동자금 규모는 11.5% 증가했다. 연간 부동자금 증가율이 -0.7~2.6%에 그쳤던 2010~2013년과는 크게 대비된다. 올해 들어서도 부동자금(6월 말 현재)은 지난해 말 대비 11.3% 증가하며 통화량 증가율(5.5%)을 두 배 앞섰다.

가파른 자금 부동화의 밑바탕엔 위축된 투자심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나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저금리 기조 속에 경기회복 기대감도 높지 않다 보니 장단기 금리차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장기 금융상품 매력도가 하락하고 있다”며 “부동산, 주식 등 주요 자산가격이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투자 대안이 부재한 점도 단기 부동자금 증가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美금리인상 앞두고 돈맥경화 심화 우려

시중자금 부동화는 통화완화 및 재정확장을 앞세운 당국의 부양책 약발을 떨어뜨리며 가뜩이나 부진한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산분석팀장은 “저금리로 인한 투자기회 축소에 가계소비 감소, 기업 투자수요 둔화 등이 겹치면서 통화승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당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로 유동성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유도해 직접금융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계산 역시 최근 중국발 악재에 따른 증시 불안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단기 부동자금이 앞으로도 계속 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연말에 개시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최대 고비다. 미국 금리인상이 외국인 자금 유출 등 금융시장 변동성 강화로 이어질 경우 투자심리가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 연말 부동자금 규모가 1,000조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완중 팀장은 “경제에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금은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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