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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美·蘇 우주경쟁처럼… 美·中 슈퍼컴퓨터 개발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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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美·蘇 우주경쟁처럼… 美·中 슈퍼컴퓨터 개발 레이스

입력
2015.08.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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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명령에 서명

2025년까지 中보다 20배 빠른 엑사플롭급 주문하며 총력전 나서

中, 톈허-2호 세계 최고 슈퍼컴

2013년 이후 美 자존심에 상처, 고성능 칩 금수 조치 등 강력 견제

속도= 국가경쟁력 "새로운 산업혁명 슈퍼컴서 시작"

중국의 한 과학자가 광저우 국립 슈퍼컴퓨터센터에 설치된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 컴퓨터 ‘톈허(天河)-2’를 살펴보고 있다. 광저우=신화통신 연합뉴스
중국의 한 과학자가 광저우 국립 슈퍼컴퓨터센터에 설치된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 컴퓨터 ‘톈허(天河)-2’를 살펴보고 있다. 광저우=신화통신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슈퍼컴퓨터’를 둘러싸고 자존심 대결이 뜨거워지고 있다. 냉전시대 우주개발을 놓고 과거 미국과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양대 강국 미ㆍ중 이 상대보다 계산 속도가 빠른 컴퓨터를 보유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총력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2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미국 과학자들이 개발하도록 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또 가장 빠른 컴퓨터의 구체적 사양까지 제시했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20배 더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초당 연산 속도가 100경(京) 회를 넘어서는 이른바 ‘엑사플롭’(Exaflop) 급 컴퓨터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악관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조기에 현실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가전략컴퓨팅계획’(NSCI)을 수립하고 가능한 빨리 새로운 슈퍼컴퓨터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엑사플롭급 컴퓨터 개발을 주문한 것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가 미국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컴퓨터가 개발된 이래 줄곧 이 분야를 주도해온 미국은 2013년 6월 중국에게 이 부문의 선두자리를 빼앗겼다. 중국이 미국 인텔 등에서 수입한 초고성능 반도체 칩을 조립해 ‘톈허(天河)-2’를 완성한 것. ‘톈허-2’는 초당 33.86페타플롭(Petaflop·1초당 1,000조회 연산)의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전까지 1위였던 미국 슈퍼컴퓨터보다 두 배가 빠르다.

영국 에든버러패럴렐컴퓨팅센터(EPCC)의 마크 파슨스 연구위원은 “슈퍼컴퓨터 레이스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깨닫게 된 것”이라며 “이번 계획은 중국에 빼앗긴 최고 자리를 찾아오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평가했다. 백악관 과학ㆍ기술정책실의 톰 카릴 기술ㆍ혁신 부책임자도 “지금 슈퍼컴퓨터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다가올 미래의 연산능력 수요와 기술개발에 대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향후 수 십 년간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시도는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첫 사례가 아니다. 미국은 올 2월 대 중국 수출금지 품목에 인텔의 초고성능 칩 ‘제온’(Xeon)을 포함시켰다. 미국 상무부는 대량 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당국의 별도 승인 없이는 무역거래가 금지되는 명단에 중국의 국방과학기술대학, 광저우 슈퍼컴센터 등을 추가했다. 국방과학기술대학은 중국 첨단무기기술 연구의 핵심이며, 광저우 슈퍼컴센터는 텐허-2호를 운영하는 주체다.

미국의 공세에 중국도 강력하게 맞받아 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초고성능 칩의 금수를 계속할 경우 러시아와 함께 관련 기술을 공동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나온 직후인 이달 초에는 자신들도 8테라플롭 이상의 연산속도를 내는 슈퍼컴퓨터의 해외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산분야의 세계적 컨설팅업체 IDC의 밥 소렌슨 연구위원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금수선언은 오히려 역설적인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 1위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지만 중국은 고성능 상업 컴퓨터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선진국에 여전히 뒤진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 발표에 맞서는 조치를 내놓겠다고 한 것은 미국과 대응할 정도로 기술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슈퍼컴퓨터 대결을 벌이는 이유는 뭔가. 전문가들은 다가올 미래에는 슈퍼컴퓨터 성능이 곧 국가경쟁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슈퍼컴퓨터는 당장 군사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실제로 폭발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슈퍼컴퓨터만 있다면 보유 중인 핵폭탄의 성능을 개량시킬 수 있다.

정확한 날씨 예보와 유전자 분석이나 단층촬영을 통한 암 진단 등 일상생활에도 광범위한 분야에서 슈퍼컴퓨터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극한의 연산능력을 지닌 컴퓨터 파워가 요구되고 있다.

예컨대 슈퍼컴퓨팅은 가상화 기술을 통해 극대와 극미, 초고속과 초저속, 초고위험 등 인간의 역량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슈퍼컴퓨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이 인간을 상대로 한 퀴즈 대결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대표 사례다.

산업 현장에서는 실시간 이미지 분석을 통해 불량품을 검사하고,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서는 음성인식과 자연어 처리, 이미지 자동분류 기법에 슈퍼컴퓨터가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난다면 그 통로는 슈퍼컴퓨터일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러시아도 미ㆍ중에 뒤지지 않으려고 자체 슈퍼컴퓨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의 견제로 원자력 분야에서 외국산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독자적인 슈퍼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러시아의 슈퍼컴퓨터 업체인 로스아톰은 2011년 초보적인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성능이 높아져 현재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ㆍ중의 슈퍼컴퓨터 대결이 과거 미ㆍ소의 군비경쟁처럼 쓸데 없는 자원낭비라는 혹평도 나온다. 두 나라가 보유한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만으로도 현재 기술수준의 복잡한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 행정명령은 실질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과학정책, 특히 컴퓨터 분야는 최근 수 년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며 “과학정책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좌우되고, 과학계도 연방정부 연구예산을 차지하려는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1위 컴퓨터만 보유했을 뿐 총 보유 슈퍼컴퓨터 대수와 활용도 측면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과잉 대응으로 평가했다.

세계 1위 연산능력을 자랑하는 텐허-2호에 대해서는 중국 쪽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과학계의 현실에 비춰 톈허-2호의 계산 속도는 필요 이상으로 강력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의 주요 물리학 연구소들이 톈허-2호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뒤,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몸값이 24억위안(4,500억원)에 달하는 이 기계는 또 다른 ‘거품’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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