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사진 폴더를 문득 뒤졌다. 1,000 여 장의 사진이 저장돼 있다. 그저 장난 삼아 찍었거나 낯선 곳에 들러 무작위로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주로 풍경이 많고 나무나 꽃, 개나 고양이, 특이한 건물 그리고 잠깐씩 들렀던 외국의 정경들이다. 그런데, 당시 정황이 기억나지 않는 사진들이 있다. 날짜가 찍혀 있지만,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왜 그걸 찍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별로 예쁠 것도 없고, 보고 있으면 심란해지기만 하는 쓰레기 더미 같은 건 왜 찍었을까. 시간의 한 지점에 구멍이 나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맹점 속으로 돌연 빨려 드는 기분이다. 공연히 가슴 한쪽이 뜨끔하다. 술에 취했던 걸까. 주위가 밝은 것으로 보아 취했더라도 넋이 나간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낯선 꼬마의 옆모습은 또 무엇인가. 무슨 기분이었을까. 꼬마와 얘기라도 나눴던 걸까. 아무리 돌이켜도 떠오르지 않는다. 벌써 치매가 시작된 거라곤 믿을 수 없다. 괜히 불안해진다. 동시에, 삶의 어떤 순간들이 가지고 있는 비자발적 의지 같은 걸 떠올리며 나 자신이 오묘해지기도 한다. 문득, 내가 기억하는 것들과 나를 기억하는 것들 사이의 오차를 곱씹어본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네가 기억하는 내가 과연 같은 사람일까 하는 것도. 또 사진을 찍어본다. 프레임 속에 붙들린 저 파란 하늘은 나중에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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