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은 없었다. 남의 탓, 조상 탓 만 있었다. 잘한 것도 있단다. 반성인 듯 반성 아닌, 반성 같은 모호한 수사만 있었다. 사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안다. 때려 놓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이 아니다. 피해자가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요, 사죄이다. 우리에게는 광복 70주년, 일본에게는 패전 70주년인 올해, 일본의 총리가 내놓은 담화는 ‘군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서 옹색할 때 ‘군색하다’는 표현을 쓴다. ‘군색한 감 장수는 유월부터 감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얼마나 형편이 다급하고 옹색하면 유월에 익지도 않은 감을 팔까? ‘군색(窘塞)하다’는 또 자연스럽거나 떳떳하지 못해서 거북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군색한 표현’, ‘군색한 변명’ 등이 그 예이다. 씁쓸하지만 아베 총리의 담화가 좋은 보기가 됐다.
비슷한 말로 ‘궁색(窮塞)하다’가 있다. ‘궁색하다’가 ‘아주 가난하다’의 뜻일 때는 ‘군색하다’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뜻이다. ‘군색한 살림’보다는 ‘궁색한 살림’이 훨씬 가난한 상태를 말한다. 말이나 행동의 이유나 근거가 부족할 때에도 ‘궁색하다’라고 한다. ‘궁색한 대답’ ‘궁색한 변명’ 과 같이 쓰인다.
‘군색한 변명’과 ‘궁색한 변명’은 같은 뜻일까?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군색한 변명은 앞뒤가 맞지 않고 떳떳하지 못해서 거북한 변명, 즉 다분히 나쁜 의도가 느껴지는 변명이다. 궁색한 변명은 근거가 부족한 변명임은 같지만 임시방편으로 둘러대는 느낌이 강하다. 애초부터 사죄에는 관심이 없고 책임 회피와 정치적 이득만을 노린 아베 총리의 담화는 진정으로 ‘군색한 변명’이었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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