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룹 후계자로 떠오르기도
제일비료로 재기 시도했으나 실패
폐암 악화로 베이징 병원서 쓸쓸히
끝내 이건희 회장과의 화합 못 이뤄
14일 별세한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삼성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남으로, 한때 삼성그룹 후계자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고인은 이 선대 회장 밑에서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인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진 것이 계기였다. 울산에 공장을 짓던 삼성 산하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당시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꿈꾸던 이 선대 회장은 결국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고인에게 삼성의 지휘봉을 맡겼다. 1960년대 고인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 무려 17개 주력 계열사의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을 맡았다.
하지만 고인이 삼성의 총수로서 앉아 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선대 회장이 부진한 경영실적과 자질 부족을 이유로 3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이 선대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 “장남 맹희에게 승계할 생각으로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으나 6개월도 안 돼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썼다.
이 과정에서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 청와대에 삼성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터졌고, 여기에 고인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으며 이 선대 회장과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고인은 1973년 삼성에서 떨어져 나와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이후 그는 몽골, 중국 등 해외로 유랑하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그에게 ‘비운의 황태자’‘삼성가 양녕대군’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94년 부인 손복남 안국화재 상무(현 CJ제일제당 경영고문)가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하며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분리됐지만 고인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CJ로 이름을 바꾼 제일제당은 고인의 장남 이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다.
고인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2년 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산 반환청구소송 때문이다. 무려 7,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고인은 1,2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했다.
이때 고인은 이건희 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해원상생(解寃相生)의 마음으로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 서로 화합하며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고인의 마지막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인은 민사소송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절제했으나 이듬해 암이 전이 돼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장학만 선임기자 trend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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