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수위 결정 안된 건설사까지
무리하게 사면해 주려다 엇박자
입찰담합 사실이 이미 경쟁당국에 적발돼 조만간 처분을 앞둔 건설사들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기 위해 뒤늦게 자수하는 시늉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주무부처들 간의 의사소통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아직 처벌을 받지 않은 건설사까지 무리하게 사면해주려다 보니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14일 정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조만간 건설입찰 담합 3건에 대해 전원회의 등을 열고 행정처분 수위를 의결한다. 앞서 공정위는 담합에 연루된 A업체 등 10곳 내외 업체에 자세한 범죄 사실과 행정처분 수위를 명시한 심사보고서를 송부했다.
문제는 A업체 등을 이번 광복절 특사 대상으로 인정해줄 것인지 여부다. 전날 국토교통부는 ▦담합행위가 인정돼 13일까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등 제재를 받은 업체와 ▦14일 이후 일정 기간 안에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업체에 대해 입찰참가 자격 제한을 사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A업체 등은 아직 과징금 등 제재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공정위 조사를 통해 담합 사실이 강제적으로 밝혀진 터라 통상적인 의미의 자진신고 대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국토부는 이런 특수 사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A업체 등을 사면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른 업체와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미 적발된 상태이긴 해도 A업체 등에 자진신고할 기회를 주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기소돼 판결을 앞둔 피고인에게 갑자기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혼선이 빚어진 것은 관계부처 간의 원활치 못했던 의사소통 탓이 없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면 직전에 공정위에 처리해야 할 사건이 남았냐고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면을 앞두고 공정위 조사담당 부서(카르텔조사국)가 ‘속도전’을 벌이며 입찰담합 사건을 심사보고서 송부 단계까지 마쳤지만, 여름 휴가철 등을 맞아 지난달 29일 이후 3주째 공정위 심판정이 열리지 않으면서 의결이 늦어진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건설사 사면의 혼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로 건설 관련 단체 등이 집단적인 자진신고 운동 등을 펼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 경우 건설사들은 자진신고 즉시 공정위 조사 대상에 오르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번 사면은 입찰참가 자격 제한만 사면해주는 것이지,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등 공정위 처분까지 사면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자진신고 즉시 담합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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