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탄산칼슘 물 만나면 폭발, 소방관 창고 내용물 모른 채 진압"
中 당국, 외신 기자 막고 언론 통제…戰勝 70주년 행사 앞두고 전전긍긍
소방관 희생 5명 늘어 17명으로
중국 톈진(天津)시 탕구(塘沽)항 물류창고 폭발 사고가 대형 화재로 번진 것은 초기 진압에 나선 소방관이 뿌린 물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물과 반응하면 격렬한 폭발 반응을 일으키는 탄화칼슘 등이 보관된 창고에 소방관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특히 이로 인해 독성물질이 물에 녹아 들아 주위를 오염시키면서 현장에서는 기준치의 8배를 초과하는 시안화물(청산가리) 등이 검출됐다.
14일 신경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12일 발생한 폭발 사고는 탕구항에 있는 루이하이라는 물류회사의 위험물 적재 창고에서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은 한 경찰의 말을 인용해 이 창고는 독성 물질 보관 용도로 지어졌으며 폭발 당시 시안화나트륨과 질산암모늄, 질산칼륨, 탄화칼슘 등 최소 700톤 이상 저장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질산암모늄은 폭탄의 원료이고, 아세틸렌 원료로 쓰이는 탄화칼슘은 물과 만나면 폭발을 일으킨다. 때문에 해당 물질이 창고에 있던 것을 모르던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물을 뿌리면서 대형 폭발사고로 번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화학안전 전문가인 데이비드 레깃은 “(물과 반응한) 아세틸렌 폭발이 질산암모늄의 폭발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톈진항 폭발사고를 찍은 영상들을 시간 순으로 동시 편집한 영상
특히 이 같은 독성 물질들이 소방관에 뿌린 물에 녹아 들면서 주변을 대규모로 오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관영 CCTV는 이날 공식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 “환경부가 사고 직후 사고 현장에서 배출되는 지하 오폐수 관을 조사한 결과 화학적 산소 요구량(COD)과 시안화물이 각각 기준치의 3~8배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일부 ‘특별오염물’의 기준치는 14배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CCTV 기자는 “3분 정도 현장에 서 있었는데 피부가 가렵고 아팠다”고 밝혀, 현장이 오염된 상태임을 시사했다. 더구나 14일 톈진 일부 지역에선 비까지 내려 오염 확산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 사고 대책 본부측은 현장에서 외부로 배출되는 지하 오폐수 관을 모두 봉쇄했다고 강조했다. 톈진과 가까운 베이징(北京)시는 8월17일부터 9월6일까지 독성 화학품과 폭발 가능성이 있는 위험 물품 등에 대한 생산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국은 이번 사고가 9월3일 항일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언론 통제에 나섰다. 당국은 사고 관련 생중계와 외신 기자들의 현장 접근을 막고 있다.
한편 희생된 소방관의 수는 또 다시 5명이 늘어 모두 17명으로 증가했다. 이들 중엔 결혼한 지 12일 밖에 안된 인옌룽(尹艶榮·25ㆍ왼쪽 사진)도 포함됐다. 인옌룽은 지난 2일 결혼식을 올렸고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이라고 중국 매체들이 전했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건물 6층에서 6세 소녀를 구해 내 영웅이라는 찬사를 들어 온 1등 소방관이었다. 실종 상태인 소방관은 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화재 현장에 32시간 동안이나 갇혀 있던 소방관이 이날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고 전했다.
중국은 14일 현장에서 5구의 시신을 수습, 사망자수는 55명으로 늘어났다. 사고 현장의 불길과 연기는 많이 잦아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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