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식민지배의 사죄와 반성을 언급한 것에는 주목했으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 ‘일본의 다음 세대가 더 이상 사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에 주목하면서, 이웃 국가와의 관계 개선과 일본 보수진영에서의 입지 유지 사이에서 계산된 줄타기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담화 내용이 한국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만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ㆍ미ㆍ일 3각 동맹에도 파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14일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200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에서 반복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과거형으로 뭉뚱그린 아베 담화를 상세히 보도했다.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응도 함께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과거 사죄를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검은 역사를 언급했으며 새로운 사과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정교하게 짜인 문장으로 과거에 대한 반성을 언급했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전날 내보낸 예고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주변 국가의 분노를 감수하는 대신 정치적 기반인 일본 보수파 사이에서 입지 강화에 비중을 두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이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수상 등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바꾸려는 아베 가문의 보수적 혈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8년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마이크 혼다(민주ㆍ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물론이고 에드 로이스(민주ㆍ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과 찰스 랭글(민주·뉴욕) 의원 등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해온 미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터져 나왔다.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는 “아베 총리가 소극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한ㆍ중의 진정한 화해가 멀어지고,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동맹의 틀’ 속에 넣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에도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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