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오면 이층짜리 붉은 벽돌집이 있다. 그 집을 지나 좌회전해서 1분 정도 걸어 나오면 시내버스 종점. 거기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오고 왼쪽으로 빠지면 아치형 다리가 세워진 천변이 나온다. 시내로 나갈 땐 도로 쪽으로 이동하고, 산책길엔 천변 쪽을 자주 이용한다. 아치형 다리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북한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데, 흡사 인간계가 아닌 신계의 홀로그램 같은 느낌이다. 다리를 건너면 서쪽. 구(區)가 바뀌고 지하철역이 있다. 천변으로 내려와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땐 다시 남쪽과 북쪽 중 택일.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맑은 날은 남쪽, 흐린 날은 북쪽을 많이 택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스스로 설명하기 힘들다. 잘 가지 않는 북서 방향 너머는 경기도다. 구파발과 일산이 멀지 않다. 늘 범상하게 지나다니고 익숙하게 눈에 붙인 풍경들인데, 새삼 돌이켜 글로 쓰려하니 돌연 낯설어진다. 마치 오래된 허구 속에 들어와 버린 기분. 그림을 그리듯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써본다. 집에서 나오면 이층짜리 붉은 벽돌집이 있다. 그 집을 지나… 쓰다 보니 왜 이럴까. 왠지 그 사실들을 실재라고 믿을 수가 없다. 누가 오래 전에 미리 써놓은 소설 속에 나는 살고 있는 건가. 스케치를 반복할수록 이 세계가 다른 세계 같아진다. 이생이 문득 너무 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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