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MB정부 때 정상회담 조율 무산
무력 도발로 南 대응 시험·내부 결속
핵 우위 내세워 대남 길들이기 계속
중국 등 반대 시그널이 제지 변수
응징과 협력 투트랙 해법은 유효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과 11월 연평도 포격도발은 분단 70년의 남북간 대결양상을 뒤흔들었다. 소규모 해상전투나 총격을 넘어 우리 장병 수십 명이 사망하고 영토마저 무참하게 유린됐다. 언제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고 이후 5년이 지나도록 남북관계는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북한의 도발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1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직후 확실하게 응징했다면 북한이 감히 연평도 포격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확전을 두려워하고 북한은 핵 우위를 앞세워 대남 길들이기를 계속하면서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냉랭해진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핵과 안보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과 통일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_2010년 이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장거리로켓 발사, 3차 핵실험 등 도발이 잇따랐다. 남북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천안함 폭침은 사실상의 전쟁행위로, 남북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수령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정부가 5ㆍ24 조치라는 경제제재에 그치면서 안보에 엄청난 부작용을 안겼다. 이로써 북한은 ‘핵 그림자 효과’를 확인했다. 핵 위협만으로도 남한정부와 국민을 주눅들게 만들어 도발을 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군사적 응징을 포기하면서 정전 후 최초로 북한군이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하는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초했다.”
_북한은 왜 천안함을 공격해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나.
“2010년은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이후다. 2008년 뇌졸증을 겪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광분하던 시기였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놓고 우리 정부와 흥정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대북원칙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은 직후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발을 통해‘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남한의 군사적 대응도 시험하고자 했다. 군부의 충성을 재확인하고 백두혈통 세습에 대한 내부도전을 차단하는 효과도 노렸다.”
_천안함 사건 이전의 남북관계는 어떠했나.
“북한은 2008년 보수 성향의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 ‘떠보기’와 ‘길들이기’에 나섰다. 당시 남북은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비공식 대화를 했다. 정상회담이 무산되자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로 맞섰다. 외교안보 자문교수의 일원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조찬회의에 자주 참석했는데, 이 대통령의 대북기조는 전혀 강경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 이후 대통령의 안보관이 더욱 선명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_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ㆍ개방ㆍ3000’으로 북한이 변화할 수 있었을까.
“정부가 제시한 것은 완전한 핵 포기가 아니라 핵 포기를 위한 ‘성의 있는 자세’였다. 당장 북한이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비핵ㆍ개방ㆍ3000은 지나치게 강경하거나 유화적이지 않은 적절한 수위의 정책이다.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지속된다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대북기조가 강경에서 유화로, 다시 강경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의 5년제 단임 대통령이 제시하는 방향에 순응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_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대북제재인 5ㆍ24조치에 막혀있는데.
“박근혜정부의 대북기조는 ‘균형’이다. 원칙과 유연성, 안보와 대화, 남북대화와 국제협력의 조화를 의미한다. 5ㆍ24조치는 안보와 남북협력 문제가 뒤엉킨 사안이다. 안보 면에서는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협력 측면인 신뢰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조속한 해제가 필요하다. 서로 상충할 경우에는 당연히 안보가 우선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5ㆍ24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신뢰프로세스가 5ㆍ24조치에 발목이 잡혀있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게 5ㆍ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라고 요구해야 한다.”
_10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하반기에 개연성이 충분하다. 병진정책의 성과가 부진하고 김정은의 지도력이 확고하지 않다면 북한은 도발을 통한 새로운 후광효과를 원할 것이다. 최대변수는 중국이다. 관계개선이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강력한 반대 시그널을 보낸다면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 아시아 유일의 군사동맹인 북한을 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군기잡기 차원에서 북한을 냉대하면서도 생존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_4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은.
“핵실험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북기조가 강경이든 유화든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핵개발을 해왔다. 따라서 북한의 핵개발을 두고 정부의 대북정책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중국, 미국 등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결정할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반도 정세는 상대적으로 작은 변수다. 김정은 체제는 ‘government of the nuke, by the nuke and for nuke’(핵무기의, 핵무기에 의한, 핵무기를 위한 정권)이다. 정부의 대북기조는 북한의 핵개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다.”
_북한은 핵 보유국인가.
“기술적으로는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니다. 핵 보유국은 국제사회의 기술적 ‘인정’과 정치적 ‘수락’을 거쳐야 한다. 핵실험으로 탄두를 보유했다고 증명하면 기술적 문턱을 넘은 것이다. 북한은 이 단계를 넘었다. 하지만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시비를 걸지 않아야 정치적 문턱마저 넘을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 벌어지는 핵 보유국 논쟁은 부질없다. 북한이 조만간 핵무기 실전배치를 발표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점에서 북한은 핵 보유국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또 한번 핵무기에 대한 전략적 취약성을 노출하면서 재래식 도발에 시달릴 수 있다.”
_그렇다면 정부의 북핵 해법은 불가능한가.
“정부교체와 무관하게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화의 문은 열어놓고 국제공조는 지속하되, 핵 문제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본격적인 교류협력은 어렵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이 기조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양극단으로 분열된 정치권이나 사회의 이념갈등은 정말 비관적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져 있는 한국을 보면서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겁게 생각할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딜레마다. 이와 함께 남북간 교류협력 노력과는 별개로, 도발에는 군사적 응징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킬 체인이나 한국형미사일방어(KAMD)로는 핵 위협을 억제하기 충분치 않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괴롭히는 만큼 정부도 군사적으로 북한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호취약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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