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침 밝힌 지 하루 만에
여당, 카드론 이자 인하 요구
정치권 압력에 '관치 금리' 재연 우려
금융당국은 "기존 금리 규제 다 무효"

정부가 4대부문(노동ㆍ공공ㆍ교육ㆍ금융) 개혁 후속조치를 통해 “금리ㆍ수수료 결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여당이 정부에 “카드론 이자를 인하해 달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정부가 불개입 의사를 강하게 천명한 상황에서 금융회사 금리 결정 문제에 정부가 개입해 달라는 ‘엇박자 주문’이 나온 셈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13일 국회에서 예산 관련 당정 협의를 열고, 내년 예산 편성 방향 등과 관련한 의견을 조율했다. 당에서는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방문규 기재부 제2차관 등이 참석했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은 카드론 이자 대폭 인하를 정부에 요구했다. 당 고위관계자는 “카드론 이자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한 번 점검해 달라고 정부 쪽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이런 움직임은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일부 카드사들이 저소득ㆍ저신용 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카드론에 대해 여전히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카드론 이자는 최저 6.0%부터 최고 27.5%에 달한다. 대부업 최고이자율이 34.9%에서 법 개정을 거쳐 29.9%로 낮아질 예정인 점을 감안하면, 대부업 이자와 카드론 이자에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조달금리가 낮아져 인하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많다.
문제는 여당이 이렇게 카드론 수수료 인하를 요청한 것이 12일 정부가 4대부문 개혁 중 금융개혁 분야에서 밝힌 후속조치와 정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은행권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수수료ㆍ금리ㆍ배당 등 가격변수에 대한 금융당국(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인위적 개입은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보험상품 가격 결정 과정도 사전신고에서 사후보고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13일에는 “기존에 하달한 금리, 수수료, 배당과 관련한 규제도 모두 무효화하겠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날 밝힌 ‘은행 자율·책임성 제고방안’을 통해 법령상 개입 규정이 있는 것을 빼고는 어떤 가격 결정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같은 날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과 기획재정부 간에 논의된 카드론 금리인하와 관련, “카드론 이자율 인하 문제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당과 금융당국 사이에 논의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금융권에서는 정치권의 압박이 계속될 경우 정부의 불개입 약속에도 불구하고 ‘관치에 의한 가격결정’이 충분히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당국이 시장 자율에 맡긴다고 약속은 했지만, 정치권의 압력을 버티고 과연 인위적 개입을 안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시장 자율성을 해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고 밝혔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안심전환대출(고정금리 지정)이나 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에서 봐도 정부가 지금까지 금리 등 결정 문제에 자주 개입해 왔다”면서 “가격 결정권을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에 돌려 주는 것이 금융 혁신이나 서비스 질적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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