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은 역대 정부의 어느 특사보다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재벌 총수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한 사람에 한정된 14명의 경제인 사면ㆍ복권이다. 법무부는 특정인의 사면 여부를 검토하기보다 죄질과 범죄 피해 복구, 형기 소화, 사면 전력, 사회기여도, 향후 경제 기여 전망 등의 기준을 먼저 만들어 대상자를 걸렀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관측과 달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빠졌다.
광폭(廣幅)의 경제인 사면을 요청해 온 재계의 실망보다는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을 앞세워 고려한 셈이다. 또한 법무부는 부인했지만,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재벌의 행태에 대한 국민 반감이 고조되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구치소 특혜’ 논란이 국민의 ‘재벌 봐주기’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한 것도 경제인 소폭 사면의 한 요인이었다고 볼 만하다.
정치인이 전면 배제된 것은 물론이고, 일반 형사범의 경우에도 부패와 강력범죄, 국민안전 위협 범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 등이 철저히 제외된 것도 이번 광복적 특사의 원칙과 절제를 돋보이게 한다.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과거에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쪽지가 내려왔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무자 입장에서 그런 것이 없었던 유일한 사면”이라고 밝힌 것도 눈길을 끈다. 여당은 “법 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면서도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대통령의 고뇌의 찬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14명의 경제인 사면으로 ‘경제 살리기’ 성격을 알리면서도 재벌총수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던 공약도 완전히 허물지 않은 데 대한 평가다. ‘엄격한 제한’은 ‘전면 제한’과는 달라 한 명이면 원칙을 지켰다고 내세울 만하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어디까지나 정부ㆍ여당의 원칙일 뿐이다.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경제인을 사면한 것은 공약 배치”라고 야당이 지적했듯, 국민은 숫자보다 재벌총수 포함 여부에 눈길을 맞추기 십상이다. 같은 재벌총수 가운데 왜 최 SK그룹 회장만인가는 대목에도 의문은 남는다. 기준이 죄질이라면서, 집행유예 중인 김 한화회장이 ‘사면 전력’이 1회 더 많다는 이유로 빠지고, 최 SK부회장은 최 회장의 동생이어서 빠졌다는 설명은 모호하다.
무엇보다 지난해 설 특사에 이어 이번에도 시국ㆍ공안사건 관련자를 전면 배제, 국민대통합의 취지를 희석한 것은 아쉽다. 특히 통일ㆍ인권ㆍ노동운동 관련자의 특사야말로 광복 70주년 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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