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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선 DMZ예술, 분단의 일상을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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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선 DMZ예술, 분단의 일상을 고민하다

입력
2015.08.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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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DMZ 프로젝트 23일까지

약국·카페 등 철원군 곳곳에 작품

강원 철원군 동송읍 동송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설치된 이재호의 ‘위장-공중전화’. 길 건너에서 마주보고 통화하는 군인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강원 철원군 동송읍 동송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설치된 이재호의 ‘위장-공중전화’. 길 건너에서 마주보고 통화하는 군인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강원 철원군 동송읍 동송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나란히 선 공중전화부스 3대. 이 위에 케이블 타이로 만든 위장막이 걸렸다. 바로 길 건너에도 비슷한 위장막을 친 공중전화박스 2대가 있다. 이재호의 ‘위장_공중전화’란 설치작품은 시골 마을의 오래된 공중전화부스를 군사분계선을 두고 마주보는 초소로 바꿔놓고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한 약국에서 군인의 마음을 낫게 해주는 특별한 약 ‘군심환’을 판매한다. 실제 약이 아니라 예술치료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해 온 현대미술작가 정원연의 작품이다. 그는 수면 문제 등 실제 군인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짜 약을 만들어 사용설명서와 함께 판매한다. 억압적인 군사문화를 에둘러 비판한 작품이다.

2012년 시작해 올해 4회째를 맞는 미술전시 ‘리얼 DMZ(비무장지대) 프로젝트’가 철원군 동송읍과 철원읍에서 13일 막을 올렸다. 리얼 DMZ 프로젝트는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으로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고 ‘안보 관광’코스로 유명한 철원의 특수성을 역으로 활용해, 국가가 강조하는 안보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하고 분단된 한국의 정치현실과 군사문화를 예술로 재해석하는 미술 전시 행사다. 지난해까지 리얼 DMZ 프로젝트는 안보관광 코스인 DMZ평화공원과 평화전망대 등 민간통제선 북쪽이나 민간통제선 바로 아래 비무장지대가 보이는 양지리 등지에서 전시를 해왔다. 그런데 올해 전시는 한 발 물러서 철원군 내 최대 번화가인 금학로 일대 버스터미널, 카페, 약국, 교회, 성당 등 27개 장소에 자리잡았다.

동송읍 카페 ‘타임리스’에 전시된 박경진의 유화 ‘훈련병’은 올 5월 발생한 예비군 총격 사건을 계기로 그린 그림이다. 군대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사건의 원인을 병사 개인의 문제로 쉽게 전가해버리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동송읍 카페 ‘타임리스’에 전시된 박경진의 유화 ‘훈련병’은 올 5월 발생한 예비군 총격 사건을 계기로 그린 그림이다. 군대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사건의 원인을 병사 개인의 문제로 쉽게 전가해버리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금학로는 민간통제선에서 5㎞가량 떨어진 곳으로 겉보기에는 평범한 지방 농촌처럼 보인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 PC방, 입대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휴대폰 보관소 등은 철원 전체 인구의 80%에 이르는 군인들이 이 도시의 일상을 이루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농사를 짓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나머지 주민들도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작가들은 자연스레 분단과 군사문화가 철원군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했다. ‘동송세월(同送歲月)’이라는 전시 제목에도 이런 의식이 드러난다. 전시기획에 참여한 김남시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동송의 한자를 지명 동송(東松)이 아니라 ‘함께 보낸다’는 뜻을 지닌 동송(同送)이라 쓴 것은 분단의 현실을 한국인 모두가 함께 겪었다는 의미”라 설명했다.

작가들이 보는 DMZ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군인 출신으로 국방부 홍보사진작가로 일하는 정승익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실제 군사분계선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반면 DMZ를 ‘사회 속 분쟁지역’으로 해석한 설치미술작가 신제현은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철원 시내에 고리 핵발전소, 용산참사 현장, 임대차 분쟁을 겪은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지의 사진을 전시했다.

철원 주민들과의 대화를 적극 시도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화가 김소영과 시인 심보선이 협업한 ‘동송삼방’이다. 두 작가는 철원성당 앞마당 정자에 세 폭짜리 나무병풍을 세워두고 그림과 글을 대화를 주고 받듯이 썼다. 김소영은 “이 장소가 주민들이 만나는 쉼터라 자연스럽게 낙서를 할 수 있도록 작품을 내버려뒀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기간에 그림을 그려주는 워크숍과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철원 금학로에서 23일까지 작품을 전시한 후 29일부터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로 자리를 옮겨 11월 29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02)739-7098.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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