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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땅에서 평화의 聖地로… 프란치스코 교황 화해 메시지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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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땅에서 평화의 聖地로… 프란치스코 교황 화해 메시지 되새긴다

입력
2015.08.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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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문 1주기 기념행사로 분주… 순례길 걷기·교황 친필 전시 등 다채

순교자들 애끊는 사연에 먹먹 "사회통합 세계적 명소로 떠올라"

지난해 8월 교황방문 이후 ‘순교의 땅’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해미읍성 진남문 전경.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은 고을 별로 공사구간을 맡은 ‘공사실명제’가 시행된 곳으로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했다. 서산시제공
지난해 8월 교황방문 이후 ‘순교의 땅’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해미읍성 진남문 전경.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은 고을 별로 공사구간을 맡은 ‘공사실명제’가 시행된 곳으로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했다. 서산시제공

“청년들이여! 깨어나라, 잠들어 있는 자는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지난해 8월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남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다.

해미읍성은 교황의 방문으로 전세계에 ‘순교의 땅’으로 이름을 알렸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평화와 화합의 장소로 떠오르면서 관광객도 급증하고 있다. 충남도는 내포 천주교 역사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1년. 둘레 1,800m, 높이 5m의 해미읍성은 성벽 화강석이 촘촘하게 맞물려 철옹성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5일 교황방문 1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막바지 단장으로 분주하다.

조선 태종 14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을 시작, 세종 3년(1421년)에 완성된 해미읍성은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손꼽힌다.

현재 남문인 진남문(鎭南門)과 동문 서문이 있고 성내에는 동헌(東軒) 어사(御舍) 교련청(敎鍊廳) 작청(作廳) 사령청(使令廳) 등의 건물이 있다.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때 이순신장군이 이 곳에서 집무를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성 안으로 한발 내디디면 드넓은 잔디밭과 아름드리 나무가 펼쳐진다.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도 외관에서 느껴지는 평온한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성 안팎을 둘러보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렇게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성안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했던 장소와 사형터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천주교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고문과 처참하게 처형을 당한 이름 모를 민초들의 애달픈 사연을 상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해미읍성 옥사터 옆에 자리잡은 호야나무. 천주교 박해 당시 군졸들은 신자들을 가지에 매달아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굵은 철사가 몸통과 가지에 깊숙이 박혀 있어 당시의 아픈 역사를 전한다. 서산시제공
해미읍성 옥사터 옆에 자리잡은 호야나무. 천주교 박해 당시 군졸들은 신자들을 가지에 매달아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굵은 철사가 몸통과 가지에 깊숙이 박혀 있어 당시의 아픈 역사를 전한다. 서산시제공

해미는 고려시대부터 내포지방 군사요충지면서 일찍이 천주교가 전파돼 신자가 많은 고장이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유교의 전통을 위협한다는 미명아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 투옥하고, 그것도 부족해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을 하며 박해했다.

박해기간은 무려 100년 가까이 이어졌다. 해미읍성과 주변에서만 1790년대부터 무려 3,000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면천, 덕산, 예산 등지에서 살던 신자들이 해미 진영 군졸들에 의해 체포돼 이 곳으로 끌려왔고, 읍성 서문 밖 사형장에서 꽃잎처럼 스러졌다.

신자들 가운데 양반들은 홍주, 공주, 서울로 이송되었으나 민초들은 그마저 절차도 없이 짐승만도 못한 대우와 혹독한 고초를 겪다가 죽음을 당했다. 1866년 병인대박해 기간에만 숨진 사람이 1,000여 명에 이른다.

읍성의 주문인 진남문을 들어서 걷다 보면 감옥터에 다다른다. 동헌 동남쪽 1,800평에 내옥, 외옥으로 구분되던 감옥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이곳에서 신자들은 고문과 굶주림, 질병으로 숨져나갔다. 감옥터 옆에는 당시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호야나무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명하듯 그대로 남아있다.

군졸들은 천주교 신자의 머리채를 호야나무에 매달고 몽둥이로 내리치며 고문했다. 나무의 묵은 가지 깊은 곳에 박힌 녹슨 철사줄이 남아 당시의 처참함을 상상하게 했다.

철책으로 터를 표시한 옛 동헌 자리와 복원된 아문(衙門)과 호서좌영(湖西左營)에서는 호령과 곤장 소리, 비명이 울리는 듯 했다. 이곳을 돌아 남서쪽으로 가면 질퍽한 옛 저자길이 나온다. 이 길은 신자들이 형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서문 밖으로 나가면 하수로와 사형장이 나타난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순교자들이 죽음을 앞두고 암송했던 기도문처럼 들렸다.

신자들의 처형방법은 잔혹했다. 군졸들은 이들이 사용하던 성물을 밟게 하고 돌다리에 눕힌 뒤 커다란 돌로 내리쳐 돌다리는 도마로 변했고 하천은 피로 채워졌다. 신자들의 가슴과 머리를 으스러뜨리던 ‘자리개돌’은 서문에서 800m 떨어진 천주교 해미성지에 전시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100년 가까이 사형장으로 이용하던 서문 밖 냇가가 민가와 가깝고 시체가 조금 떨어진 벌판에다 수십 명씩 생매장하기 시작했다. 군졸들은 생매장터에 가기 전 개울과 연결된 ‘둠벙’에 오랏줄에 묶인 신자들을 산 체로 수장시켰다. 훗날 이 둠벙은 ‘죄인들이 떨어져 죽었다’하여 ‘죄인둠벙’으로 불리다 말이 줄어 ‘진둠벙’으로 바뀌었다.

신자들이 생매장 당했던 여숫골에서는 지금도 논 밭을 갈다 인골이 선체로 발견되고 있다.

순교자들이 죽으면서도 하늘을 향해 ‘예수, 마리아’를 외치자 이를‘여수머리’로 알아들은 사람들은 ‘여우에 홀린 머리채로 죽어갔다’며 이곳을 ‘여숫골’로 불렀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해미읍성에서 미사를 집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교자들의 사연 하나 하나가 눈물을 솟게 하고 발길 닿는 곳 모두 위로와 진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5일 열리는 교황 방문 1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전국 해미성지순례길 걷기 행사’다.

한서대에서 해미읍성까지 4.5㎞ 구간을 걷는 이 행사는 일반 참가자와 천주교, 불교와 개신교신자들이 참여해 교황이 남기고 간 화해와 화합의 울림을 다시 보여줄 전망이다. 방한 당시 교황이 탔던 오픈카 등 사용했던 물품들도 전시된다.

교황과 아시아 주교들이 먹었던 오찬 메뉴도 베일을 벗었다. ‘교황정식’이라는 이름으로 서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 특산품을 메뉴로 브랜드화해 일반인에게 첫 선을 보인다. 서산시는 컵밥과 도시락 형태로 일반인에게도 제공할 계획이다.

교황방문 이후 해미읍성과 주변은 많은 변화가 왔다.

세계적인 성지로 재조명되면서 종교관광을 비롯한 일반관광 수요가 급증, 지난해보다 관광객이 30%이상 늘었다.

이에 민간자본과 국비 등 198억원을 투입, 체험형 레지던스, 교황 기념관, 컨퍼런스룸, 체육수련시설 등을 갖춘 세계청년문화센터와 세계청년광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초로 저수지에 잠긴 순교자 압송로를 복원하기 위해 수상순례길도 조성할 예정이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지난해 교황방문 이후 해미읍성이 국가와 인종은 물론 사회통합의 국제적인 명소로 떠올랐다”며 “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해치지 않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서산=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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