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ㆍ노인회서 민법 개정 착수
친족폭행 처벌 강화 형법도 추진
평생 농사만 짓던 A씨는 2002년 4월을 잊을 수가 없다. 재산 배분 문제에 불만을 품고 10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장남 B씨의 갑작스런 등장과 함께 불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B씨는 “그 동안의 불효를 용서해달라. 앞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제사도 모두 지내겠다”며 5명의 동생과 아버지 A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다만 효도의 전제 조건으로 A씨가 소유한 수원의 땅을 자신에게 상속해줄 것을 요구했고, 가족들은 10년 만에 나타난 장남의 뜻을 존중해 재산 상속에 모두 동의했다.
B씨는 아버지 A씨와 뇌졸중을 앓던 어머니를 약속대로 집으로 모셨다. 하지만 소유권이전 등기가 완료되자 일주일도 안 돼 어머니를 노인병원으로 보냈고, 어머니가 사망하기 네 달 전부터는 병원비마저 끊었다. 이에 격분한 A씨는 “상속의 전제가 된 효도가 없었으니 땅을 돌려 받아야겠다”면서 2003년 B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부자간의 약정이 있었더라도 이미 완료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A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다행히 소송은 항소심에서 번복이 됐지만 당시 A씨가 불효에 울고 소송에도 진 이유는 현행 민법이 미리 상속재산을 받고도 부양 의무를 지키지 않은 이른바 ‘먹튀 자식’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법은 자녀가 부양 행위를 하지 않거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증여와 관련된 재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도, 같은 법 588조에 이미 증여가 완료된 경우는 계약 해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상속 계약 이후 증여가 이뤄지지 않거나 진행 중일 때는 계약 해지와 재산 환원이 가능하지만, 이미 다 줬다면 법의 영역 밖의 문제라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과 대한노인회는 B씨 같은 먹튀 자식들의 재산상 이익을 법률로 제한하기 위해 민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민법 588조를 삭제해 불효가 객관적으로 입증되면 증여 완료 여부와 상관없이 부모가 상속한 재산을 되찾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민병두 새정치연합 의원은 민법 개정안과 함께 친족 폭행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현재 친족 폭행 사건은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이자 반의사불벌죄(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죄)로 규정돼 있다. 때문에 합의 남발로 친족 폭행 사건의 처벌이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아, 이 부분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민 의원은 “지난 달 노인학대 인식의 날 행사에서 노인들의 상속 재산 다툼과 폭행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개정 작업에 나서게 됐다”며 “입법 활동 외에도 ‘좋은 상속 운동’, ‘유언장 잘 쓰기 운동’ 등 노인층을 위한 후속 캠페인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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