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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이전에 소유권 넘겼으면 환수 불가… 4년간 친일파 168명 토지 1300만㎡ 회수 그쳐

입력
2015.08.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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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국제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강원 춘천시 남이섬은 이제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다. 하지만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 중에 이곳 소유자가 친일파 민영휘(1852~1935)의 후손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명성황후의 먼 친척 뻘인 민영휘는 일제의 조선병합에 조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1910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와 함께 5만엔(현재기준 10억원)의 은사금을 받은 대표적인 친일파다. 민영휘는 은사금 외에 당시 중추원 의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권력형 부정축재’에도 성공했다. 귀족 출신으론 거의 유일하게 대자본가로 변신했고 당시 조선 최대의 갑부로 이름을 떨쳤다. 남이섬은 바로 이때 민영휘가 불린 재산을 물려받은 후손이 사들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조사위)는 2006~2010년 활동 당시 남이섬을 국가에 귀속하지 못했다. 조사위의 활동 근거법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의 한계 때문이었다. 특별법 제3조는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이 포함된 것은 친일재산을 되찾는 과정이라도 새로운 소유권자가 갖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가 컸다. 결국 조사위는 이 조항으로 인해 친일파 후손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친일재산을 제3자에게 매매해 소유권을 넘기거나 공동소유 관계가 된 토지 등에 대해선 환수할 수 없었다. 남이섬도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됐다.

남이섬은 1965년 민영휘의 손자 민병도(사망)씨가 매입해 이듬해 종합휴양지 개발 목적으로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법인화됐다. 대표이사는 민씨였지만 소유지분을 갖는 제3의 주주가 발생, 특별법이 명시한 ‘법 적용 제외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1994년에는 증손자 민웅기(66)씨가 회사 명의를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변경하고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 전문경영인이 대표를 맡고 있지만, 회사의 최대지분은 여전히 민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남이섬 측은 “손자 민병도씨가 자신의 퇴직금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민병도씨의 재산 상당 부분이 조부 민영휘가 일제에게서 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축적된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조사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사위는 당시 남이섬을 제외한 민영휘 소유의 땅 51필지(73억원)에 대해선 귀속에 성공했다.

조사위는 4년의 활동기간 동안 재산환수 대상으로 특정된 친일파 507명 가운데 168명의 토지 약 1,300만㎡를 환수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마저도 친일파 후손들이 낸 토지 반환소송 137건 중 14건에서 국가가 패소하면서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 크기에 달하는 199만3,366㎡가 원고 측에 되돌아갔다. 조선 왕실의 종친 출신으로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이 가장 많은 189만4,274㎡를 찾아 갔다. 아직 진행 중인 소송은 2건인데, 모두 이해승 관련 소송으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하나는 이해승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친일재산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친일재산 처분으로 발생한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는 소송이다. 행정소송은 1심에서 국가가 패소했지만 2심에서 뒤집혔고, 부당이득 반환소송은 국가가 1ㆍ2심 모두 228억원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일부 승소했다.

재산환수 대상인 친일파 339명의 후손들은 민영휘 사례와 비슷한 이유로 아예 조사위의 서슬 퍼런 ‘칼날’을 비켜갔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 정교원(1891~미상)의 후손은 경북 성주군, 경기 평택시 등에 위치한 토지 28만여㎡를 제3자에 모두 매각하고 양도소득세마저 체납한 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조선병합에 찬성해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매국노 조중응(1860~1919)의 후손도 경기 남양주 등의 땅 70여만㎡를 이미 제3자에게 모두 분할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중응의 후손 대부분은 30여년 전 일본에 귀화했다.

조사위에서 사무처장을 지낸 장완익(52) 변호사는 “특별법 도입 후 재산도피 형태로 숨긴 재산에 대해서는 부당이익금 반환청구소송으로 환수할 수 있지만 도입 이전에 팔아 치운 재산은 환수가 불가능했다”며 “남은 친일재산 환수를 위해서라도 기획재정부 혹은 법무부 산하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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