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분단 70년 결정적 장면] (4)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 정세현 前 통일부 장관 인터뷰

DJ 햇볕정책·페리 프로세스로

신뢰 쌓아 첫 정상회담 성사

2차 정상회담 '서해평화지대'

北군부 경제 관여 긴장완화 첩경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시대를 여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는 대역사가 성사된 1차 정상회담에선 남북 간에 합의된 통일 방안(1국가 2체제)이 최초로 마련됐고 7년 후에 이뤄진 2차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평화와 경제협력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나왔다. 하지만 정례화의 기대를 모았던 정상회담은 그 이후로 맥이 끊긴 상태다.

‘통일대박’을 주장하는 박근혜정부에서도 정상회담의 기미는 여전히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1?2차 정상회담의 전후를 지켜본 정세현 전 장관은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은 분단 국가인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정상회담 없인 남북 관계의 진전도 있을 수 없다”며 “원칙론과 실용주의를 적절히 조화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_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1차 정상회담 개최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페리 프로세스(클린턴정부 대북조정관 윌리엄 페리가 방북 후 작성한 북한 비핵화의 포괄적 해결방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북한이 김대중 정부를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는 데 있다. 98년 4월 ‘비료회담’에서 북한에 비료지원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을 요구하자 곧바로 거절당했다. 햇볕정책을 흡수통일을 위한 계략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그래서 즉시 햇볕정책의 추진 전략을 바꿨다.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정부는 뒤로 빠지는 대신 민간을 앞세우고 민간인 방북 승인 조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곧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를 끌고 방북하겠다고 나섰다. 페리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그해 8월 북한이 대포동 로켓을 발사하고 금창리 핵 활동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국제적으로 햇볕정책이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클린턴정부는 보수층에서 거부감이 덜한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을 대북조정관에 임명했고 평양을 방문한 페리는 대북 포용 기조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페리는 이 보고서가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특보의 작품이라며 ‘임동원 프로세스’라 불렀다. 1차 정상회담의 시그널로 평가 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선언(2000년 3월)은 이러한 기초공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북은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광복 70년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극적으로 손을 잡았고, 7년 뒤인 2007년 10월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시 김 위원장을 두 번째로 만났다(아래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_6ㆍ15 공동선언은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상호 체제의 인정과 존중을 기본으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 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한 점이다. 남북이 합의한 최초의 통일방안(1국가 2체제)이다. 갑자기 하나가 될 수 없으니 과도기적으로 2체제로 가다가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은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 측에서 대놓고 북한이 추진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실패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의 기본 철학을 건드리기보다 그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깨닫도록 상황을 조성해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_10?4 공동선언, 특히 ‘NLL포기’라는 지적을 받은‘서해평화협력지대’는 아직도 유효한가.

“6?15 선언의 4항인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전략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다. 경제적 지원과 안보 위협을 교환하자는 것으로 북한이 경제적 이득 때문에 남한에 군사적 도발을 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군사적으로 복잡한 서해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서해공동어로와 하구 모래 채취사업을 추진, 북한 군부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면서 군사 도발을 자연스럽게 차단하자는 것이다. 만약 서해평화협력지대가 현실화됐다면 연평도 포격 등은 없었을 거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휴전선이 20㎞ 북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쿠바 정부도 과거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카리브해 관광사업을 군부에 맡기면서 미국에 대한 군사적대행위가 줄어들고 그것이 미국-쿠바 수교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군부로 하여금 경제사업에 관여하게 만드는 것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첩경이라는 점에서 서해평화지대는 오늘날도 유효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 무효화를 선언한 이후 그 의미를 살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2차 정상회담 이후 약 5개월 만에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도 막후접촉을 통해 3차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끝내 불발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고위급접촉조차 재개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초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 3차 정상회담 개최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현재까지 아무 진전이 없는 상태로 광복 70주년을 흘려 보내고 있다.

_8년째 정상회담의 맥이 끊긴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북핵 문제가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도 나아갈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년하청이다. 남북관계가 단절되면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설득할 기회가 아예 오지 않는다.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먼저 복원시켜야 한다. 그 시간이 뒤로 미뤄질수록 핵 능력을 발전시키는 북한의 몸값은 점점 비싸진다. 정상회담을 열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진정성을 보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사전 예고도 없이 정부의 통일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해버렸다. 북한이 ‘남한 주도의 체제통일을 위한 대결선언’이라고 반발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당시, 하루 전에 판문점 라인을 통해 북측에 내용을 전달한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_미래 열릴 지 모르는 3차 정상회담은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1?2차 정상회담 합의를 존중하는 선에서 플러스 알파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무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하면 북한은 납득하지 못한다. 남한 정권은 절대적 정권교체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만 북한 정권은 3대가 한 줄기로 내려왔기 때문에 아버지 때 합의, 할아버지 때 합의를 뒤집을 수가 없다. 원칙론과 실용주의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북에 무조건 양보하는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비선이나 비밀접촉을 적절히 활용하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비선접촉은 없다고 강조하는데 그건 외교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남북관계도 일종의 외교이고 남북은 상대방에 대한 의구심으로 꽉 찬 정치체제다. 물밑 접촉 없이 접점을 만들 수가 없다. 원칙론과 실용주의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접근해야 한다.”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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