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뜨겁게 두 손을 맞잡았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2박 3일 간 회담을 가진 두 정상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등을 담은 6ㆍ15 공동선언문(5항)에 서명했다.
공동선언 채택 이후 남북 간 교류협력은 봇물을 이뤘다. 적십자 회담과 장관급 회담 등 각종 대화채널이 가동됐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며 경의선 철도가 놓였다.
한 동안 순풍을 탔던 남북관계는 그러나 2002년 6월 발생한 제2연평해전 등으로 위기를 맞았고 특히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강행은 치명적 위기가 됐다. 2005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담은 9ㆍ19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이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줬다. 그러나 이듬해 9ㆍ19 공동성명의 구체적 실천계획인 2ㆍ13 합의가 나오면서 2차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1차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한 서울 답방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7년 4개월 만에 대화의 물꼬를 튼 남북 정상은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백두산관광 실시 등 사회문화교류 실시 등을 담은 10ㆍ4 공동선언(8항)을 채택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임기를 불과 5개월 남긴 시점에서 채택된 10·4 선언은 대북 강경기조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 됐고 3차 정상회담은 현재도 요원한 상태다.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