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덕에 우후죽순
주거환경 열악해질 우려
빌라 급증 지역 대책 필요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낡은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 골목(신정중앙로 12길). 4층 이하 빌라가 1m도 안 되는 간격으로 골목 양쪽을 점령하고 있지만, 그 틈을 비집고 새 빌라를 짓기 위한 터 닦기가 한창이다. 옆 골목(오목로 29길) 역시 가지치기하듯 신ㆍ구 빌라가 뒤엉켜 뻗어 있다. 이 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동네 주택의 60% 이상이 연립ㆍ다세대(빌라)인데 최근 세입자들이 속속 빌라 매매로 갈아타는 움직임이 보이자 기존에 있던 단독주택을 헐고 연립 다세대를 짓는 건물주가 많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빌라촌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전했다.
빌라 짓기 열풍은 비단 이 동네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빌라의 ‘공습’이 거세다. 전세난민 상당수가 안착하기 위해 빌라 매매로 눈을 돌리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서 빌라 건축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보다 싼값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선 물밑 듯 쏟아지는 신축 빌라가 반가울 지 모르지만, 기반시설이 현저히 부족해 전반적으로 동네의 주거 하향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질 거란 얘기다. 전문가들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세난이 부른 빌라시대
빌라는 일반적으로 연립이나 다세대 주택 같은 4층 이하 공동주택을 말한다. 과거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 바람이 불 때는 보유 자산 가치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탓에 외면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엔 우후죽순 빌라가 들어서고 있고, 거래량 역시 확 늘었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빌라에 해당하는 연립과 다세대주택의 신축 허가는 연면적기준으로 각각 88만㎡, 299만6,000㎡다. 전년 동기 대비 연립은 171%, 다세대는 41% 급증한 것으로 같은 기간 아파트(32%)보다 증가폭이 훨씬 크다. 특히 전세난이 극심한 수도권에서는 연립주택 허가 물량이 1년 새 505%나 폭증했다.
매매 거래량도 올 들어서만 두 배 넘게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월 2,921건(연립ㆍ다세대)이던 거래량은 7월 두 배가 넘는 5,885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서초(증가율 58%) 등 부자동네보다 강서(124%), 관악(196%), 은평(139%), 양천(187%) 등 낡은 빌라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에서 많이 늘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전세 물량 자체가 없고, 겨우 구한 전세는 임대료가 집값의 70~80%에 육박해 세입자들이 아파트 가격의 60% 정도인 빌라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며 “건물주들도 이런 시류에 맞춰 6개월이면 지을 수 있는 빌라 공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전세난이 빌라 업종을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주거 하향화, 공급폭탄 우려
하지만 곳곳에서 빌라촌이 형성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주거의 질적 하락이다.
건축법상 3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때는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때 관리사무소, 놀이터, 양로원 등 시설을 짓는 것도 이 법을 적용 받아서다. 반대로 30세대 미만일 때는 주민을 위한 시설을 만들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법을 악용해 빌라 건축주들은 대규모 빌라촌을 지을 때 여러 명을 동원해 29세대 이하로 나눠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200세대 규모의 빌라를 10명의 건축주가 20세대씩 등록하는 식이다. 결국 주거의 질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미국은 평균 이상으로 한 지역에 인구가 몰리면 일시적으로 주택 공급 중단을 선언하고 특이사항 등을 조사한 뒤 주택 정책에 이를 반영한다”며 “우리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빌라가 10% 증가하는 지역일 경우 기반시설을 짓도록 하는 조건으로 인허가를 하는 등 도시계획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빌라촌의 생활 인프라 수준 높아지고 궁극적으로는 빌라의 고질적 문제(주거여건 악화, 집값 하락)들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쏟아지는 빌라 물량들이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규정 연구위원은 “인허가 물량이 급증했기 때문에 공급과잉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분양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등 향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빌라 시행, 시공 주체들 대다수가 중견 이하 기업체라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여선애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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