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피스&그린보트’에 참가했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ㆍ67) 아사히신문 전 주필과 권용석(45)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교수의 글을 싣는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역지사지 차원에서 역사 화해와 협력을 위해 상대방 정부, 언론, 국민에게 바라는 내용을 담았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아사히신문 정치부장, 논설주간, 주필을 거쳐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권 교수는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동아시아 역사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왕 호칭 일본인에 모욕감… '천황' 불러주길"
[한국 입장이라면… 와카미야 前 아사히신문 주필]
한국에서는 일본의 ‘천황(天皇)’을 보통 ‘일왕(日王)’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를 한자로 볼 때마다 무심코 라면을 떠올리고 만다. 일본에는 닛신(日淸)식품이 제조한 ‘닛신라오(ラ王)’라는 컵라면이 있어 ‘일왕’은 그걸 연상시킨다. ‘라오’는 ‘라면의 왕’이다.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함부로 갖다 붙인 ‘일왕’이란 호칭에 거의 모든 일본인이 모욕당한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틀림없다.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나는 일본 언론 각사 정치부장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과 회견한 후 당시 박정수 외교장관과의 만찬 자리에서 나는 한 가지를 요청했다.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그게 주효했는지, 김대중 정권은 마침내 ‘천황이라고 부른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르듯, 방일한 김 대통령과 면담한 천황은 자신의 선조에 백제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밝혀 김 대통령을 놀라게 했다.
그 무렵 ‘천황이라고 부른다’고 선언한 한국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 한일관계가 악화하자, 이윽고 그 신문도 ‘일왕’으로 돌아와 버렸다. 2012년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다케시마) 방문 뒤 천황에 사죄를 요구하는 격한 발언도 해서 일본인의 분노를 샀는데, 이 때도 이 대통령은 ‘일왕’이라고 말했다.
일본 헌법 제1조는 이렇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인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여기에 왕은 없다. 헌법이 일본의 상징으로 규정한 것은 천황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일본 헌법을 무시하는가.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천황이라는 호칭은 천하를 지배하는 황제와 같아서, 실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 역사적으로 왕위를 ‘받아온’ 한국으로서 왕보다 격이 높아 보이는 천황이라는 호칭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원래 왕(king)과 황제(emperor)는 어떻게 다를까. 왕이 일국의 지배자인 것과 달리 로마황제처럼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의 지배자가 황제로 불려왔다. 그렇다면 일본의 천황이 예로부터 왕에 가까운 존재였음은 확실하다. 다만 천황이라는 것은 중국의 역대 황제도 인정해온 일본 특유의 호칭이고, ‘간무(桓武)천황’ ‘메이지(明治)천황’과 같은 고유명사의 일부가 되어왔다. 지금도 세계에는 왕은 많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후 황제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서양각국은 Emperor라고 부른다. E가 대문자인 것은 고유명사로서 쓰기 때문이다. 중국도 구애되지 않고 천황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하나의 혈통을 유지해 온, 세계에서 드문 존재라는 점도 특별 취급의 한 요인일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에 천황의 사진에 예를 표하고, 절대복종을 맹세하도록 강요 받은 굴욕의 기억도 있어 저항감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분명히 과거 ‘대일본국헌법’에서 천황은 ‘신성하고 침범할 수 없는 통치자’로 여겨졌고, 군국주의에도 이용됐다. 우리 일본인도 그 시대의 천황제에 대한 거부감은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그런 천황의 성격이 완전히 변한 지 70년이 지났고, 지금은 국민이 경애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존재가 돼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존재로서 국가의 공식행사에 나오거나 외국 손님을 모시고 있지만, 정치적인 권력은 일절 갖지 않는다. 대재해가 발생한 지역을 방문해 피난민들을 위로하는 것도 커다란 역할이다. 누구도 천하의 지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대통령도 방일하면 천황과 만나고 만찬에도 초대된다. 그 때마다 과거에 대한 통한의 마음을 표명해온 것도 천황이다. 그런 상대를 올바른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역시 무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래서야 한국 방문도 이뤄질 수 없다.
최근 어느 한일 심포지엄에서 토론자인 한국인 기자가 “지금부터 천황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한국 지도자나 언론인이라면 곧바로 이런 움직임을 넓혀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정부와 모든 언론이 뜻을 모아 일제히 ‘천황이라고 부릅니다’하고 선언하자. 그것만으로도 일본의 한국 이미지는 훨씬 좋아질 게 틀림없다.
"역사 경시 탈피해야 국가브랜드 걸맞은 존경"
[일본 입장이라면… 권용석 日 히토쓰바시대 교수]
해방70년, 수교50년을 맞아 한일양국의 시민 1,000여명과 함께 피스&그린보트에 몸을 실었다. 여기에는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반일 인사도, 한국을 업신여기고 싫어하는 혐한파도 없다. 한일우호를 바라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래서 한일연대의 필요성을 느끼는 시민으로 가득하다. 부정과 증오가 없는 선상은 마치 “피스&그린공화국”같아 이대로 세계일주를 떠나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이상적인 공간이기에 ‘내가 만일 일본이라면…’이라는 역지사지의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일본한테 한국은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국민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의 “언덕위의 구름”처럼 승승장구하는 근대일본의 성공스토리나 ‘아시아는 하나’라는 아시아주의의 이상은 한국의 식민지지배라는 모순 앞에서 주춤한다.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맹세해도 식민주의의 유산은 위안부 군함도 등 또 다른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일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원폭에서조차 수만명의 조선인이 희생당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일본인이 속으로 한국이 이 세상에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번쯤은 생각했을 것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축구나 김연아나 여자골프를 볼 때조차도…
하지만 그럴수록 일본은 한국(조선)이라는 과제를 회피하고 왜곡해서는 안된다. 일본이 한국과 관련된 역사문제, 인식문제를 풀고 한국과 아시아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더이상 독일과 비교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그 경제력과 문화력에 걸맞은 존경과 대우를 받을 것이다. 내가 일본인이라면 한국이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고 홀가분해지고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싶다.
그 숙제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한국의 진실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듯 한국은 역사문제로 일본을 비판하고 한일전에 목숨을 거는 ‘귀찮은 이웃’이자 반일국가인가? 아니다. 일방적인 침략과 식민지배를 당하면서도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우고 세계에서 가장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나라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은 늘 일본이고 서울에는 일본브랜드와 쿨저팬이 넘쳐난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또한 한국은 일본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존재이다. 전쟁에 동원되고 전후에는 (일본을 대신하여) 분단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 분단에 의한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부흥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내가 일본이라면 한국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고멘, 아리가또(미안하다, 고맙다)”
외교에 있어서는 내가 아베총리라면 스스로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시노부스케(岸信介)전총리를 참고할 것이다. 기시는 미일안보체제를 확립했지만, 아시아를 중시하고 아시아지역주의적인 발상도 지니고 있었다. 한일관계를 개선코자 소위‘쿠보타망언’과 일본의 역청구권을 철회하고 이승만대통령에게 고향선배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대해 사과하는 친서를 전하는 등 한일관계에 적극적이었다. 그뿐아니라 아시아개발기금을 제창하고 인도의 네루 수상과 함께 영미의 핵실험에도 반대하고, 58년의 레바논사태 때에는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등‘대미자주’적인 자세도 취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한일경제협력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은 기시라면 미국과의 동맹관계,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동아시아지역주의의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한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독도문제는 신중하게 다룰 것이다.
고이즈미전총리는 야스쿠니문제를 정치가 아닌‘마음의 문제’라고 했다. 군국주의 미화가 아니라 희생한 영령을 추도하는 마음의 발로라는 것이다. 진정 그렇다면, 야스쿠니와 평화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면 일본은 그 마음을 직접 한국민에게 성실하게 전하면 된다. 그리고 위안부할머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길 바란다. 역사문제 등 한일 현안에 대해 강자의 논리인‘법대로 하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의 문제’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한류가 일본에서 퇴출되는 분위기는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방송을 도배하다시피한 한류드라마와 K-POP 아이돌은 지상파에서 거의 볼 수없고 인기모창프로그램이나 예능프로에서도 한류는 사라졌다. 이 전체주의적인 획일성은 과거의 한국을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예전에 가수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멘토인 미와 아키히로(美輪明宏)는 일본에서의 한류확산은 정통파나 실력파가 인정받는다는 의미에서 일본이 제대로된 사회가 되고 있는 증표라고 말한 바 있다. 장기불황과 일본적 시스템의 노쇠화로 침체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역동적인 신한국에 주목하는 ‘룩코리아LOOK KOREA’ 현상이 한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사실 한류가 인기있던 시절의 일본은 정권교체도 실현되고 동아시아공동체 담론도 활발했다. 내가 일본이라면 늘 그랬듯이 한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일본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물론 향후 문화교류는 연예계 중심이 아닌 문학 예술 분야 등 좀더 깊이 있는 교감을 통해 문화적 공동체로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마침 이번 항해에 동승한 은희경 김연수같은 한국작가의 번역책이 나온 것은 다행이다. 가까운 미래에 한일정상이 서로의 문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성숙한 한일관계를 꿈꿔본다.
부산을 떠난 배가 조용필의 가락에 맞춰 다시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이 바다는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바다이며 러시아와 중국과도 연결된다. 이번 항해를 통해 우리는 국경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바다로 연결된 한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동북아의 지중해같은 바다를 일본은 근대이후 ‘니혼카이(일본해)’라 부르고 있다. 일본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지만 내가 일본인이라면 한배를 타는 동안 그 점이 조금 불편하고 쑥스러웠을 것같다. 한일관계는 이런 사소한 염치와 상대에 대한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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