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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시 써지는 날

입력
2015.08.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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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일찍 잠에서 깼다. 오랜만에 맡는 아침 공기. 많이 잔 것도 아닌데, 몸이 가뿐하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파랗다. 오늘은 뭔가 다른 날인 것 같다. 그런 만큼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싶다. 샤워하고 머리 감고 옷을 차려 입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가방엔 당장 읽을 책 몇 권과 티셔츠 두어 장. 목적지를 정해놓은 건 아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평일 아침의 기차역은 막 떠나려는 곳이 아니라, 이미 떠나와 새로 도착한 곳 같다. 시내버스를 타고 30여 분 달려왔을 뿐인데, 이상한 시차가 느껴진다. 왠지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만 같다. 그게 기묘하게 후련하다. 열차 시각표를 훑어본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등. 지인이 있는 곳도, 전혀 연고가 없는 곳도 있다. 잠깐 망설인다. 기차를 타고 싶긴 한데, 뭔가 자꾸 등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오늘 당장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결국 발길을 돌린다. 공간을 멀리 벗어나지 않아도 이미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착종이 싫지만은 않다. 어느덧 해가 뜨거워지고 사람들이 북적대기 시작한다.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다. 총 경과 시간 두 시간 남짓.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조용히 다녀간 것만 같다. 이런 날의 기운을 안다. 시가 써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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