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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닮아… 알바니아 왕위 도둑질한 독일 광대 오토 비테 '5일간의 꿈'

입력
2015.08.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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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내가…”나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되는 회고조 타령이란 게 값을 잘 쳐 받아야 애잔한 동정쯤이기 쉽지만, 그것도 ‘크게 놀면’ 길이 보전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분야의 ‘역대급’으로 독일인 광대 오토 비테(Otto Witte, 1872~1958)가 있었다. 그는 98년 전인 1913년 오늘(8월 13일) 신생 독립국 알바니아의 왕이 됐다, 고 말했다.

그의 “왕년에 내가”는 1912년 말 알바니아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서 시작했다. 알바니아 무슬림 귀족들은 오스만 술탄의 조카 ‘하림 에딘(Halim Eddine)을 새 왕으로 추대한다. 그 소식이 에딘의 사진과 함께 전 유럽에 알려졌는데, 비테는 에딘의 얼굴에서 제 얼굴을 보게 된다. 둘의 용모는 실제로 무척 닮았다고 한다.

비테는 8살 때부터 서커스단을 따라 다니며 사자 조련, 불 뿜기(fire-eater) 등 묘기꾼으로 잔뼈가 굵었지만 만담가로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순회공연 중 마술 공연으로 피그미족 추장에 추대된 사연이나 이디오피아 황제의 딸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시도한 모험 등이 그의 레퍼토리였다. 거기에 그는 ‘알바니아 국왕’이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얹는다.

해서 그는 막스 슐레프지히(Max Schlepsig)라는 곡예사 친구와 함께 하림 에딘 행세를 하며 알바니아에 입성해 왕위에 올랐다. 왕가의 부와 권력 특히 할렘을 맘껏 누렸고, 심지어 북쪽으로 국경을 맞댄 몬테네그로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음모가 탄로나기 직전 왕가의 보석을 훔쳐 도주했다. 그에 따르면, 그의 재위 기간은 닷새였다.

비테는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을 늘 ‘알바니아 전 국왕’으로 소개했고, 우편물 봉투에 ‘…국왕 존하’라 적지 않은 무례한 것들은 수령을 거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워낙 진지해서 그의 팩션(fact+fiction) 혹은 코스프레를 곧이곧대로 믿은 이들이 적지 않았고, 반신반의하며 그의 사연을 소개한 신문들도 있었다고 한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은, 독일 경찰이 발급한 그의 신분증에 ‘알바니아 전 국왕’이라 기재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국왕에 즉위”한 날로부터 만 45년이 되던 1958년 8월 13일 숨졌고, 독일 함부르크의 올스도프 묘지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에는 “Ehem Koenig V. Albanien(former king of Albania)”라 새긴 묘비가 지금도 서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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