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세상서도 홀대받는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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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세상서도 홀대받는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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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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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등장인물 8명, 총 17종 불과

김구 4종 최다… 안중근ㆍ이준 각각 3종

전두환 30종ㆍ박정희 23종에 비해 초라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암살'이 최근 흥행하면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 현대사는 항일 투쟁 중 최후를 맞거나 살아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들을 외면해 왔다.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표현하고 있어 동시대의 사실적인 자료로 인정받는다’는 우표의 소재로서도 독립운동가들은 홀대를 받았다.

본보 멀티미디어부가 우정사업본부의 ‘한국우표포털서비스(K-stamp)’에서 제공되는 국내 발행 우표 3,058종을 일일이 살펴봤더니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우표는 겨우 17종, 등장인물도 8명에 불과했다. 그 중 백범 김구 선생이 4종으로 가장 많았고 안중근의사와 이준 열사가 각각 3종, 윤봉길 의사(2종), 안창호 선생(2종)이 그 뒤를 이었다. 유관순 열사, 이봉창 의사, 서재필 박사가 등장한 우표는 단 1종씩이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30종, 박정희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각각 23, 10종의 우표에 등장한 것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역사 속 위인 중 세종대왕은 13종, 이순신 장군은 5종의 우표에 등장했다.

[광복절 기념우표의 변화상]

왼쪽부터 '해방조선기념(1946.5.), 해방일주년기념(1946.8.15), 광복10주년기념(1955.8.15)우표
왼쪽부터 광복 20주년, 30주년, 40주년, 50주년 기념우표
광복60주년(왼쪽)과 70주년 기념우표
1961년 발행된 광복절 기념우표(왼쪽)와 1981년 발행된 광복36주년 기념우표

해방 후 처음 발행된 광복절 기념우표

日서 찍어 '아이러니'

지난 4일 발행된 광복70주년 기념우표에 백범 김구 선생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11차례에 걸쳐 27종의 광복기념우표가 나왔는데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방 후 최초로 발행된 ‘해방조선기념우표(1946년 5월 1일)’는 모순적이게도 일본정부인쇄국에서 인쇄했다. 국내에서 인쇄된 광복기념우표는 3개월 후 선보인‘해방일주년기념우표’가 최초다. 광복기념우표는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도 쓰였다. 1961년 군사정부는 5년이나 10년 주기로 발행하는 관례를 깨고 광복16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는5ㆍ16군사정변을 4ㆍ19, 8ㆍ15와 함께 한반도를 지켜나갈 혁명적인 역사로 묘사하고 있다. 제5공화국 역시 1981년 ‘36년간의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난 지 36년이 됐다’는 의미를 앞세워 광복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경제성장에 힘을 쏟던 1965년(20주년)과 1975년(30주년) 발행한 우표에는 공장의 굴뚝과 고속도로 등 산업화 이미지를 싣고, 40주년 기념우표에는 독립정신을 남북통일로 발전시키자는 의미로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담았다. 태극기와 환호하는 시민들의 도안은 50주년에, 60주년 기념우표에는 임시정부청사와 독립선언문 등 민족의 발자취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우표로 읽는 시대상]

왼쪽부터 말라리아박멸운동 기념우표(1962.4.7), 파월장병 원호기금 첨가우표(1967.6.20), 헬리콥터 헌납기금 첨가우표(1969.2.15)
왼쪽부터 어린이 저금 우표(1964.12.20), 새마을운동 10주년 기념우표(1980.4.22), 국산자동차 시리즈우표(1983.2.25)
왼쪽부터 가족계획 홍보용 우표(1979.5.7), 출산장려 우표(2008.5.8), 정보통신의 날 기념우표(2013.4.22)

기금 모으기 위한 '첨가우표'

못살던 60, 70년대 수시 발행

적어도 인터넷과 이메일이 보급되기 전까지 전국방방곡곡에서 실생활과 밀접하게 사용된 까닭에 우표는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을 계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산업화와 국토개발이 절실했던 시기엔 공장 노동자를 그린 보통우표(1949년)를 시작으로 수력발전소(1955년), 저축장려(196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념우표(1960년대 중반)와 경제부흥시리즈우표(1971년) 가 발행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기념우표에 이어 80년대엔 국산 자동차와 선박시리즈 우표도 등장했다.

액면가에 일정액을 더해 판매하는 첨가우표는 나라경제가 어렵던 시기 다양한 기금을 모을 수 있는 방편이었다.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해구제를 위한 첨가우표를 60~70년대 수시로 발행한 것을 비롯해 ‘파월장병지원기금 첨가우표’도 발행했다.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과 울진, 삼척 침투사건 직후 ‘헬리콥터헌납기금 첨가우표’가 발행되었는데, 당시 헬리콥터를 군에 헌납하기 위한 모금이 각계에서 이어졌다.

1970년대 ‘둘만 낳자’는 표어를 넣은 가족계획 우표는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2000년대 들어 출산장려(2008)나 다둥이 가족의 이미지를 강조한 우표(2011)로 변화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할수록 느리고 불편한 우편과 우표의 역할은 축소되어 왔으나 우표는 빠르고 편리한 전기 통신기술의 발전을 일관되게 축하하고 기념해 왔다. 국제전기통신연합(UIT)가입부터 한국전기통신 100주년, 정보통신의 날 기념 우표 등 1957년부터 2013년까지 총 23종의 기념우표가 꾸준히 발행되어 왔다.

[황당하고 뜬금 없는 우표들]

성급한 통일의 꿈 ‘국토통일기념우표'

해방 이후 남북한이 통일된 적이 있었던가. 6.25전쟁이 한창인 1950년 11월 20일 남한 정부는‘국토통일기념우표’를 발행한다. 국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자 성급하게 통일을 꿈꿔버린 정부의 상황판단 능력이 의심스럽다. 마치 일등 공신처럼 우표에 등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도 눈에 띈다. 우정당국의 대통령 사랑은 휴전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이 전 대통령의 80회, 81회 탄신 기념우표가 1955년과 56년 각각 발행되기 이른다.

아웅산 테러에... 거짓말 된 '순방우표'

전두환대통령 호주, 뉴질랜드, 인도, 스리랑카 방문 기념우표4종(1983.10.8)

1983년 10월 서남아 및 대양주 5개국 방문에 나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첫 방문국인 버마(현 미얀마)에서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나 예정됐던 호주, 뉴질랜드, 인도, 스리랑카, 브루나이 순방을 전격 취소했다. 전 전대통령의 순방에 앞서 발행된 우표들은 결과적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기념하는 거짓 우표가 되어 버렸다.

MB정부 4대강 사업 기념우표 눈살

4대강 사업은 시작부터 그 효과와 폐해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적 합의 없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이명박 정부는 과연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우표까지 발행했을까.

해양경찰창설 60주년 기념우표(2013.9.10)

2013년 9월 해양경찰 창설 6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됐지만 이듬해 세월호 참사 초기 대응에서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 해경은 결국 해체되고 만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 (숙명여대 법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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