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 수없이 많이 다녔던 코스
첫 번째 지뢰 터지자 北 소행 직감
두 다리 절단 부상 당한 하 하사
"군인으로 남고 싶다" 복무 의지

“우리 아군이 고통을 느낀 만큼, 수만 배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다시 가서 적의 소초(GP)를 부숴버리고 싶다.”
4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목함 지뢰 공격을 받았던 수색 대원들은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 가득 차 있었다. 처참한 사고 현장을 눈 앞에서 목격한 이들이지만,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투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부상당한 동료를 후송했던 이들은 당장이라도 보복작전에 뛰어들 태세였다.
11일 오전 9시 40분 당시 수색작전에 참가한 대원 가운데 부상자 2명을 제외한 6명 중 3명이 사고 1주일 만에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부상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 6명 모두가 인터뷰 하기로 됐으나 일부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해 문시준(24) 소위와 팀장 정교성(27)중사, K3 기관총 사수인 박준호(22) 상병만 인터뷰에 응했다. 사고에 따른 심리적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국군고양병원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전투복 차림에 건강해 보였지만 사고 당시를 언급할 때는 다소 긴장한 듯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팀장으로 대원들을 이끈 정 중사는 첫 번째 지뢰가 터지자마자 적에 의한 공격이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2009년 임관 이후 수색대에서만 근무해왔다는 그는 “통문은 수 없이 많이 다녔던 코스다. 이유 없이 폭발이 일어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적 포탄 낙하!”라고 외친 뒤 경계태세를 지시한 정 중사는 1차 지뢰폭발로 부상당한 하모(21) 하사에게로 곧장 달려가면서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뛰었다”고 했다.
하 하사를 부팀장 김모(23) 하사에게 인계하고 전방경계를 하던 정 중사는 2차 지뢰 폭발로 김 하사까지 쓰러지자 그를 땅에서 질질 끌다시피 해 둔덕으로 겨우 옮겼다. 정 중사는 “하 하사가 흘렸던 피가 손에 너무 많이 묻어서 김 하사의 몸이 자꾸 미끄러졌다”고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장병들의 증언으로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혼란 속에서 발휘된 전우애의 장면도 추가로 확인됐다. 김 하사에 이어 하 하사까지 옮겨져 둔덕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김 하사는 오른쪽 발목이 거의 잘려나간 고통을 참으며 스스로 몸을 옆으로 움직여 부상당한 전우가 숨을 공간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의무 지원 병력을 기다리는 동안 정 중사는 박준호 상병에게 지시해 주변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부목 삼아 부상자들의 다리를 붕대로 감는 응급조치도 침착하게 진행했다. 이 와중에 김 하사는 자신보다 부상 정도가 심한 하 하사에게 “정신차려라”라고 계속 소리 지르며 의식을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수색대원들은 이날 오후 하 하사와 김 하사를 사고 이후 처음으로 면회할 수 있었다.
3명의 대원들은 하루 빨리 부대로 복귀해 적의 공격에 맞서 처절한 응징을 가하겠다고 다짐했다. 하 하사를 옮기던 중 2차 지뢰 공격을 받았던 박 상병은 “내일이라도 부대로 복귀해 작전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며 “수색대대가 맡은 임무를 끝까지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문 소위 역시 “불안한 마음 이런 것은 전혀 없다”며 “다시 DMZ로 가서 적을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두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하 하사 역시 “군인으로 남고 싶다”며 복무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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