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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도우려 시작했다 우리집 요리사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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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도우려 시작했다 우리집 요리사 됐어요

입력
2015.08.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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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서 요리까지 아이들이 좋아해 계속할 수밖에

한 자녀에 맞벌이 보편화, 일보다 가정 중시 쿡방도 한 몫

육아용품 큰손으로… 유아용 손수레 왜건 히트시키고

아빠 아기띠 필수품으로 떠올라… 승용완구 등 탈 것 성패 좌우

바야흐로 ‘아빠육아’ 시대.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 박성웅씨가 둘째 세현이에게 소고기 당근 죽을 만들어 먹이고 있다. 베페 제공
바야흐로 ‘아빠육아’ 시대.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 박성웅씨가 둘째 세현이에게 소고기 당근 죽을 만들어 먹이고 있다. 베페 제공

시민단체 알바연대의 상근자로 상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종웅(36)씨는 11개월에 들어선 둘째 세현이의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인다. 곱게 간 쌀을 끓여 체에 걸러 먹이는 초기 이유식부터 채소를 갈아 하나씩 추가하는 중기 이유식을 거쳐 현재는 끓인 밥에 다진 채소와 고기를 넣어 식감을 살린 후기 이유식을 만들어 주는 중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 있는 이유식 용기 구입부터 이유식 조리기 세트, 채소 다지기까지 직접 구입해 아이가 먹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박씨는 시판 이유식에 진저리를 치던 아이가 아빠가 만든 이유식은 넙죽넙죽 잘 받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말로 표현 못할 희열을 느낀다. “세현이는 물론 다섯 살 세은이까지 아빠가 해주는 탕수육이랑 새우튀김이 제일 맛있다며 외식 나가는 걸 싫어해요.” 박씨는 “가끔 바깥음식을 먹고 싶은데 그걸 못 하니 사실 좀 힘들긴 하다”면서도 “아내와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니 다음날이 되면 또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웃었다.

‘쿡방시대’… 이유식 만드는 아빠들

요리하는 남자들의 시대. 이유식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젊은 아빠들에게 육아는 돕거나 참여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직접 주도하는 것이 마땅한 생의 미션이다. ‘내 자식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다’는 열망은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바야흐로 ‘아빠육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2,213명으로 전년 동기(1,573명) 대비 40.7%나 증가했다. 여전히 육아부담이 엄마에게 편중돼 있지만, 2005년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가 208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10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두 아들의 아빠인 회사원 김겸(39)씨는 육아휴직을 하지는 않았지만, 20개월인 둘째 아들의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맞벌이하는 아내가 유기농 채소와 고기 등 재료를 사다 놓으면, 쌀을 불리고 채소와 고기를 다져 아이 월령에 맞는 묽기로 죽을 끓이는 일은 김씨가 도맡아 했다. 8세인 큰 아들이 어릴 때, 뜨거운 불 앞에서 내내 주걱으로 이유식을 젓고 있던 아내가 안쓰러워 도와주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처음엔 약불에서 젓기만 도와주던 것이, 채소 다지기, 고기 육수 내기 등으로 반경이 넓어지다가 급기야 주도권을 찬탈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행히 직장이 집에서 가까워 퇴근 후 아이들의 반찬과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을 여전히 전담해 하고 있다. 지금도 일요일 저녁이면 아이 반찬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 주요 임무라고.

“큰 아이는 여덟 살이라 해주는 음식에 대한 리액션도 확실하고, 같이 요리하는 것도 놀이의 하나로 즐기는 편이에요. 처음엔 아내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더라고요.”

특별한 아빠라는 칭찬에 김씨는 “요즘 제 세대의 아빠들은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냐”며 “주변에 비슷한 아빠들이 많아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자녀에 맞벌이가 보편화하면서 육아 참여가 당연하게 인식되는 데다 가정을 일보다 중시하는 세대정서가 투영된 결과다. 아토피, 알러지 등을 유발하는 유해환경과 어린이집 폭행사건 같은 각종 안전사고의 빈발로 안심하고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이 역설적으로 아빠육아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쿡방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김씨는 “TV마다 요리하는 남자들이 나오니 그런 영향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바깥 나들이를 위한 아빠들의 필수품 웨건. 위고 제공
바깥 나들이를 위한 아빠들의 필수품 웨건. 위고 제공

육아용품시장 판도 바꾸는 아빠들의 ‘큰손’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엄마들의 전용 공간이었던 육아용품시장의 판도마저 바꾸고 있다. 아빠의 체격에 최적화한 아기띠와 아빠들이나 끌 수 있는 짐수레가 필수 육아용품으로 부상한 것. 차량용 카시트나 유모차, 승용완구 등 탈 것과 관련된 육아용품은 특히 아빠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유아용 손수레 웨건은 아빠들이 히트시킨 대표적인 육아용품. 네 바퀴의 직육면체 수레에 아이를 눕힐 수도, 앉힐 수도, 짐을 실을 수도 있다. 두 명의 아이를 동시에 싣고 다닐 수 있어 형제ㆍ자매를 둔 가정의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본래 야외활동을 위한 짐을 싣는 캐리어로 등장했던 웨건은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아빠들이 많아지면서 승용완구로 재분류, 안전장치를 강화해 출시되고 있다. 브레이크 장착은 물론 승차감과 핸들링을 보완하고 차양까지 다는 추세다. 독일에서 제작된 위고 웨건은 원터치 브레이크, 안전벨트 등의 안전 장치는 물로 충분한 수납공간과 간편한 폴딩 기능으로 인기가 높다. 놀이동산이나 피크닉을 갈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아빠의 체격에 맞춤 제작, 출시된 아기 캐리어 ‘리틀라이프’. 키보스 제공
아빠의 체격에 맞춤 제작, 출시된 아기 캐리어 ‘리틀라이프’. 키보스 제공

아이를 업고 이동할 때 사용하는 보야저 캐리어는 아예 아빠에게 맞춤화해 등장한 육아용품이다. 등산 중에도 등에 업은 아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아웃도어용 유아 캐리어로 출시된 이 아이템은 크기와 구성이 성인 남성의 신체 사이즈에 적합해 아빠 전용 캐리어로 불린다. 견고한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착용감이 뛰어나며, 아이의 가슴과 아빠의 등 부분은 직접 맞닿게 돼 있어 정서적 교감까지 도와주는 것이 장점이다.

카시트나 자동차 등 승용 완구는 전통적으로 아빠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품목들. 이중 승용완구는 아빠 로망의 간접 실현으로 ‘장난감 같지 않은 장난감’의 트렌드를 불러왔다. 파파앤코가 출시한 BMW i8 컨셉트 유아용 전동차는 독일 BMW사와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엄격한 품질 관리하에 출시된 유아전동차로, 실제 자동차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옮겨 담아 아이들은 물론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아빠들에게 인기가 좋다.

육아용품 구매 풍속도를 바꿔놓은 아빠들의 힘은 매년 두 차례 열리는 베이비페어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올 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베이비페어에는 전체 관람객의 47.2%가 남성이었다. 2003년 2월만 해도 남성 관람객은 26%밖에 되지 않았다. 남성 관람객 중에는 아내 없이 홀로 아기띠를 두르거나 유모차를 몰고 전시장을 찾은 아빠들이 많았다는 게 베이비페어 관계자의 전언. 이주현 베페 전시팀장은 “아빠 혼자 온 관람객들이 아기 기저귀를 갈거나 우유 먹일 공간을 찾다가 여성 전용공간인 수유실 밖에 없어 입장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이달 20일 열리는 베이비페어에는 남성을 위한 기저귀 갈이대를 설치하는 등 아빠 관람객을 위한 휴식ㆍ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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