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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내 운명… 대타였는데 상까지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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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내 운명… 대타였는데 상까지 받았어요"

입력
2015.08.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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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마방진 10주년 기념작

연극 '홍도' 주인공 양영미

양영미는“홍도의 비극은 홍도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초연 때 홍도 역만 생각했다면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e@hankookilbo.com
양영미는“홍도의 비극은 홍도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초연 때 홍도 역만 생각했다면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e@hankookilbo.com

“이 작품 맨 마지막 장면에서 꽃가루를 엄청나게 뿌리는데, 막 내리면 배우들이 다 같이 줍고 청소기 돌리거든요. 인터뷰한다고 저만 쏙 빠지면 미안하니까요.”

7일 저녁 예술의전당 분장실. 연극 ‘홍도’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양영미(36)는 “공연 전에 인터뷰하는 게 더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연계 제일 핫한 남자, 고선웅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극공작소 마방진의 1기 단원으로 연극을 시작해 자칭타칭 ‘마방진 붙박이’가 됐고 “우리 여배우들을 배려해보자는 단순한 취지에서 출발”(고선웅 연출가)한 이 작품을 통해 난생 처음 주인공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초연한 이 작품으로 첫 수상(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의 기쁨도 맛봤다. 양씨는 “제가 극단 1기라 주인공 여자친구, 주인공 아내는 역은 도맡았다. 후배들 길 터줘야 한다는 생각에 ‘홍도’는 욕심 못 냈는데, 원래 주인공 맡기로 했던 3기 장소연이 일정상 서울 공연이 어렵다고 해서 제가 투입됐다”고 말했다.

임선규의 1936년 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재해석한 연극 ‘홍도’는 원작의 신파 양식과 정서를 덜고 세련된 각색과 연출, 여백을 강조하는 무대장치, 배우들의 찰진 연기로 버무린 화류비련극(기생을 주인공으로 한 비극 연극)이다. 오빠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기생이 된 여동생 홍도의 비극적인 사랑을 마방진 특유의 ‘일자화법’(속사포처럼 대사를 쏟아내 웃음을 주는 화법)으로 담백하고 강렬하게 담아냈다.

양영미는 “급하게 캐스팅돼 초연 때 대사 까먹고 광호나 오빠역 맡은 배우들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제작진들 진땀 흘리게 만든 적도 있다”며 “단원들 믿고 맡은 역으로 상 받아서 극단에서 ‘연기천재’라고 놀림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방진 창단 10주년 기념작으로 23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선보이는 이 작품에서 예지원과 함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대학 졸업 후 가수 연습생, 백화점 사무직을 거쳐 뮤지컬 앙상블로 활동했던 양영미는 2007년 독특한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마방진을 찾았다. “단원 조건으로 ‘정신과 척추가 똑바로 서 있는 자, 사랑을 해 본 자, 10만원을 지금 당장 구해올 수 있는 자’를 내걸었고, 자기소개서에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기술하라’고 돼있었어요. 연극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극단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극단은 처음으로 배우를 모집하며 ‘만장일치 때만 새 단원을 뽑는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입단 원서에 연락처를 적지 않았던 양씨는 고선웅 연출가와 개별 면접을 보고 ‘야매’로 입단했다. 기존 단원 전원이 동의할 때만 새 단원을 받는 ‘만장일치 입단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마방진 단원이 되려면 꼭 치러야 하는 과정이 있다. 하루 3시간씩 꼬박 석 달을 예비단원들과 함께 말없이 걷고 그날 느낀 점을 일기에 적어 제출하는 ‘묵언 수행’이다. 연기력보다 사람 됨됨이로 단원을 뽑는 고선웅 연출가의 스타일이 훈련 과정에도 그대로 배어 있는 셈이다. 고 연출가는 “연기 잘하는데 인간이 안 된 배우는 ‘만인의 적’이다”고 말했다. 연기는 단원들끼리 품앗이로 가르치고 배웠다. 마방진 제작 작품이 하나 둘 쌓이며 단원들 간 호흡을 맞추는 것도, 고 연출가 특유의 ‘일자화법’을 구사하는 것도 몸에 익었다. “연습 때 고 연출가가 직접 연기하면서 가르쳐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연기를 어떻게 할지) 잘 못 느끼고요(웃음) 가끔 툭툭 한 마디씩 던져 줄 때 혜안을 얻어요. 홍도 이번 공연 보고는 ‘더 단단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도 요즘 제 연기가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변하고 있어 신파극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두하고 있어요.”

입단 원서에 썼던 ‘10년 후 모습’에 그는 얼마나 근접했을까. “존 트라볼타의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데 언젠가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썼죠. 네살배기 아들한테는 영향을 준 것도 같네요. 분장실을 너무 많이 다녀서 그런지 검도 배울 때면 ‘칼로막베스’(마방진 대표작)하러 간다고 하거든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okki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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