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12일,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 힐시티 블랙힐연구소 발굴팀이 인디언지구 내 샤이엔강 유역에서 지금까지 나온 가장 거대하고 온전한 티라노사우루스 뼈를 발굴했다.
발굴팀은 후기 백악기 공룡인 애드몬토사우루스 화석을 발굴한 성과에 만족해서 막 철수하던 참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트럭 한 대가 펑크가 났고, 차가 수리되는 동안 인근 계곡을 어슬렁거리던 고생물학자 수 헨드릭슨이 예사롭지 않은 뼈 조각들을 발견한다. 전문가 6명이 17일 동안‘수’를 발굴했고, 뼈에서 암석을 제거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렸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Sue(수ㆍ사진)’란 애칭으로 불리는, 현존 최대의 T-렉스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는 치아와 두개골 뼈 250여 개 거의 전부를 포함해서 전체 골격의 약 80%를 지니고 있었다. ‘수’가 숨진 뒤 다른 청소동물이 덤비기 전에 물이나 진흙에 매몰된 기적적인 행운 덕이었다. 92년 역시 사우스다코다 버팔로 인근에서 발굴된 ‘스탠’(발굴자 ‘스탠 새크리슨’)의 골격은 63%였다. 게다가 ‘수’는 몸 길이 12.8m, 엉덩이 높이 4m, 몸무게 6.4톤에 이르는 최대 몸집의 T-렉스였다.
‘수’의 소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연구소측은 발굴 조건으로 토지 소유주 모리스 윌리엄스에게 5,000 달러를 지급했으므로 당연히 연구소 소유라고 주장했고, 윌리엄스와 그의 부족인 수(Sioux)족은 화석의 발굴ㆍ연구를 허락했을 뿐 소유권까지 넘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95년 소송의 승자는 윌리엄스였다. 그는 즉각 소더비에 경매를 의뢰했다.
‘폭군(tyrannos) 도마뱀(sauros)’의 ‘왕(rex)’이란 학명을 지닌 공룡의 간판스타 T-렉스가, 그것도 가장 크고 온전한 형태의 골격 화석이 개인에서 팔릴 가능성에 학계는 아연 긴장했다. 시카고 필드박물관은 즉각 공공펀딩에 나섰고, 월트 디즈니사와 맥도널드자선재단 등이 동참했다. 97년 10월 경매에서 필드박물관은 ‘수’를 760만 달러에 낙찰 받는다. 경매 수수료를 합쳐 ‘수’의 몸값으로 지불된 돈은 836만 2,500달러였다.
우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등을 통해 T-렉스가 어떻게 걷고 사냥하고 울부짖는지 안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학자들은 아직 ‘수’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T-렉스가 포식자였는지 청소공룡이었는지, 척추를 비스듬히 세워 이동했는지 땅과 수평으로 이동했는지, 사람 팔 만한 앞발의 기능은 뭔지, 깃털이 있었는지, 피의 온도가 변했는지 늘 따뜻했는지, 뛸 수는 있었는지, 속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누구도 아직은 장담 못한다. 물론 체형이나 깃털설 등 거의 정설로 굳어진 일부 가설은 있지만, 뒤집힌 정설의 기억이 찜찜하다.
가설과 공상은 과학적 근거의 유무로 나뉘지만, 가설과 근거의 과학적 인연은, 적어도 공룡에 관한 한, 인간과 T-렉스가 산 시간거리만큼 아득할지 모른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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