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원인 된 성폭행 가능성, 재판부 인정했지만 결정적 증거 없어
檢 내놓은 증인 3명 진술도 불인정, "강간 공소시효 10년은 지나"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 사건이 미궁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판부는 성폭행 부분에 대한 범행 가능성을 일부 시사했지만 결국 공소시효에 발목이 잡혀 실체적 진실은 규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구고법 형사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11일 특수강도강간죄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49)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인으로부터 범행사실을 들었다는 증인 3명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고, 모순점이 많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들의 진술을 보면 범행을 털어놨다는 원진술자가 분명치 않고, 피해자를 범행장소까지 자전거로 데려간 방식도 다르며, 스리랑카 당국의 공조수사에서는 원진술자가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어 “검찰이 항소심에서 새로 추가한 증인 H씨가 범행으로부터 16년이 지난 올 3월 진술하면서 성폭행의 순서와 방법, 피해자 옷차림과 소지품, 소지품의 처리방법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의 유전자가 피고인의 것과 상당 부분 일치, 피고인이 단독 혹은 공범과 피해자를 강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전자 증거를 확보한 검찰도 재판부의 지적처럼 특수강간죄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것을 감안,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적용해 K씨를 기소했으나 책 3권과 학생증, 돈 3,000원을 강취당했다는 증거 확보에 실패하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검찰은 “증인 H씨의 진술을 확인해보니 K씨 등 범인들이 성폭행이 끝나기 전에 피해자 가방을 뒤져 학생증과 책 등을 갈취했기 때문에 특수강도강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고속도로 위에서 발견됐고, 책은 갓길에 흩어져 있는 상태였으며 학생증이나 현금을 강취당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검찰 수사의 무리수를 지적했다.
K씨는 스리랑카인 2명과 함께 1998년 10월17일 새벽 귀가 중이던 계명대 정은희(당시 18세)양을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면서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양은 1998년 사건 당시 도주하다 구마고속도로에서 23톤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고, 스리랑카인 2명은 2001년, 2005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검찰은 지난해 5월 1심판결에 이어 이번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오자 “판결문을 면밀히 살펴본 후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정양의 유족들은 “제3의 범인 가능성도 있는데, 검찰이 K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짜맞추기식 수사를 벌였다”고 반발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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