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서른 살의 직장 다니는 남자입니다. 동갑내기인 여자친구와는 5년째 연애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 친구는 요즘 들어 결혼에 대해 부쩍 자주 이야기를 꺼냅니다. 하지만 사실 전 이제 직장생활을 한 지 겨우 2년째고, 모아둔 돈도 별로 없는데 집에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지금 당장 결혼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직장에서 자리도 잡고 약 3년 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더니 여자친구는 그건 너무 늦다며 화를 내네요. 그녀에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선 아직 말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하는 건데, 무작정 서른을 넘기기 싫다고만 말하면 저는 어쩝니까. 만나면 즐거워야 하는데 이 문제로 자꾸만 언쟁이 잦아지다 보니 저도 점점 지칩니다. 인생의 계획에 대해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혼적령기라는 것이 점점 늦춰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고, 또 그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들 갈 때 가긴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는 건, 여전히 이 사회는 결혼이라는 걸 한 인간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단계로 인식한다는 방증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인식 속에서, 서른 살의 남자와 서른 살의 여자가 경험하는 압박감은 그 정도가 많이 다르죠. 서른 살의 남자는 가끔 결혼은 언제 할거냐는 말을 듣긴 해도, '남자가 서른 넘으면 값 떨어지니까 빨리빨리 해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라는 말을 듣진 않으니까요. 반대로 서른 살의 여자는 그런 말을 정말로 도처에서 듣고요. 여자의 생물학적 나이는 출산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고, 나이 많은 여자는 부담스럽고 이왕이면 어린 여자가 낫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나이를 짐처럼 느끼게 되는 건,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관념의 굴레 같은 것이 아닐까 해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죠. 결혼을 해 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한데, 입사한지 2년 정도라면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결혼을 진행시킨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일 테니까요. 내려올 줄 모르는 집값, 거품이 많은 결혼비용, 거기에 고용불안과 내수침체라는 외적인 요인들까지 존재하지만 여전히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전통적인 결혼문화가 자리하고 있어 남자들의 결혼에 대한 경제적 부담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어요. 누울 자리 봐가며 발을 뻗는다고, 지금 결혼을 진행시키기엔 도저히 그 '누울 자리'라는 게 없어 보이는 것도 이해는 충분히 갑니다.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결혼이란 것도 하는 것일 텐데, 남녀 공히 이런 압박감과 부담 속에서 인생의 결정을 하게 된다면, 사실 그 후의 행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지겠죠.
하지만 이런 외적인 상황은 상황이고, 지금 두 분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서로에게 집중하는 일일 거예요. '내가 이렇게 힘들고 부담스럽다는데 왜 너는 네 입장만 자꾸 주장하니?'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어쩜 너는 내 말을 안들어주니?'라고 끝없는 ‘서운함 배틀’을 자꾸만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아, 내 입장은 이렇지만 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구나. 우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태도가 가장 필요할 거예요. 자기 인생의 타임 테이블은 온전히 자기가 꾸려갈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은 상대방과의 조율이 필요한 일이기에 당연히 이렇게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끝없는 자기 주장만 반복한다면 좀 아이러니컬하게도 '언제 합칠 것인가'의 문제 때문에 합치는 일 자체가 무산되어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이 사람은 자기 입장밖에 모르는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은 당사자에게 꽤나 큰 실망과 무력감을 주는 일이니까요.
차분하게, 화내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 않고 지금의 마음을 털어놓으세요. 지금까지 얼마나 행복했고, 앞으로 함께할 미래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같이 말하세요. 하지만 어떤 어려움을 피하고 싶고, 어떤 것이 두려운지도 꼭 말해야 하고요. 앞으로 함께할 사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이러이러한 부분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번듯한 집 한 채 갖고 시작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으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말 거예요. 깊숙한 곳까지 다 이야기해야 상대방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확실히 정할 수 있을 거고요. '지금 둘이 가진 돈을 모아서라도 작은 집에서라도 함께 시작하자'고 할 수도 있고, '그래 역시 우린 정말 결혼은 힘들겠구나...'라며 이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겠죠. 사실 결혼을 하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정말 맘을 맞추고 한 팀이 되어 깊은 유대감 속에 잘 지내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결혼 시기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일은 힘들기는 해도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할 거예요. 그리고 사회가 정해놓은 관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지긴 힘들겠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른 넘으면 값이 떨어진다든가, 결혼비용은 누가 얼마를 내야 한다든가 하는 관념들로부터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그런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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