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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동아시안컵, 北골키퍼 ‘부폰’ 만든 건 옥에티

입력
2015.08.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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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명 붙이는 일을 좋아하는 편인데, 한국 언론과 팬들은 별명에 꽤 능숙해서 보고 있으면 흥미로울 때가 많다. 영국 언론은 별명에 창의력이 없다. 긱스는 ‘Giggsy' 램퍼드는 'Lamps' 스콜스는 ’Scholesy‘ 제라드는 ’Stevie G‘인데 상상력에 큰 점수를 주기가 어려운 별명들이다.

북한 대표팀 리명국 골키퍼의 별명이 ‘북폰’으로 나온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으며 창의적인 유머라고 생각했다. 리명국은 이제 28세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국제 무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선수로 여겨진다. 초창기에는 약점이 많은 골키퍼였다. 과거의 그는 타이즈를 신고 나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타이즈를 신은 골키퍼를 신뢰하지 않는다 (강원도 산골에서 열리는 한겨울 축구 경기라면 이해해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리명국 골키퍼는 한국전에서 매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몇몇 세이브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리명국 골키퍼의 두 손으로 무승부를 만들어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크로스와 코너킥에 대한 대처 능력 역시 훨씬 나아졌다. 라인으로 과감하게 뛰어나와 펀칭해내는 모습이 과거에 비해 안정되어 있었다.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대회 최고 골키퍼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리명국이 북폰으로 변모한 이면에는 한국의 아쉬운 공격력도 있었다. 더 확실한 슈팅을 날려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해서 리명국의 선방이 빛날 수 있었다. 한국과 상대한 팀의 골키퍼가 종종 월드 클래스로 보였던 현상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되었던 일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북한전의 핵심은 리명국의 선방보다는 한국의 허술한 마무리였다. 골대 옆을 스치는 슈팅도 있었고 라인 앞에 서 있는 수비수를 맞추는 장면도 있었다. 이러한 결과의 대부분은 불운이라기보다는 부정확한 슈팅으로 결론짓는 편이 옳다.

과거의 북한전과 달랐던 점은 기회 자체는 많이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나타난 것처럼 이정협은 타고난 골잡이가 아니었다. 그가 킬러 본능을 가진 스트라이커였다면 최소한 한 골 이상은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재성의 슈팅을 막아낸 리명국의 수비는 좋았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골키퍼라면 그러한 장면은 반사신경을 통해 대부분 막아낼 수 있다.

좋은 반사 신경은 프로 축구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다.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어렵다.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리명국(주황색 유니폼) 골키퍼가 한국의 센터링을 펀칭하고 있다.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리명국(주황색 유니폼) 골키퍼가 한국의 센터링을 펀칭하고 있다.

리명국 골키퍼의 크로스 방어가 괜찮기는 했으나 크로스 자체가 날카롭지 못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계속 이어진 코너킥도 새로운 궤적과 코스로 날아가기보다는 리명국 골키퍼가 잡아낼 수 있는 위치에 떨어졌을 뿐이다.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답답함에 숨이 막힐 것 같던 평소의 남북 대결과는 달랐으니 그 점만으로도 괜찮은 한 판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에 희망의 기운을 주는 동아시안컵이었다고 생각된다. 대회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것 자체가 수확이다. 한국은 그 트로피를 차지할 자격이 있었다. 크로스와 세트피스의 질이 떨어졌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아쉽게 다가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슈틸리케 감독이 반드시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일본전에서는 김신욱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김신욱의 존재는 동료 선수들의 롱패스 욕구를 자극했지만, 김신욱을 향해 날아간 패스들은 그다지 좋은 ‘롱볼’이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이 풀타임을 뛴 일본전보다 북한전의 몇 분 동안 더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는데, 북한전에서는 롱패스 대신 낮은 패스로 김신욱을 활용했던 이유가 컸다.

9일(한국시간)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동아시안컵 남자 대회 시상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9일(한국시간)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동아시안컵 남자 대회 시상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모든 실험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해도, 일본-중국-북한에 패하는 일은 언제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험을 했다고 해도 라이벌에 패하고 나면 팬들과 언론의 시선이 긍정적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실험의 성과와 우승을 동시에 이루었으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봐야 한다.

득점력에서 문제를 겪었지만 견고한 수비가 있었고 김승대, 이종호, 이재성 등이 수준 높은 축구를 보여줬다. 반면 아시아 축구 강국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뛰기에는 (현재로서는) 부족한 레벨임을 증명한 자원들도 몇 있었다.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어차피 이번 대회는 선수들의 능력과 수준을 실전에서 파악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대회 MVP가 장현수라고 하는데 당연히 이재성이 되어야 옳은 게 아닐까?)

이렇게 2015 동아시안컵은 끝났다.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시간이었다. 한국이 상대 골키퍼를 ‘부폰’으로 만들어주는 장면을 줄일 수만 있다면 대표팀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 같다.

축구 칼럼니스트/ 번역 조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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